일간 연 10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는 어색한 식탁을 묘사하고는 하는데, 그런 식탁을 보고 있으면 그 테이블 주변에 둘러 앉은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어쨌든 끼니 때에 맞춰 식탁에 앉은 것이니 밥은 안 먹고 왔을 테고 배도 고플 텐데, 저렇게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기싸움이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먹고 그냥 끼니를 걸러도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밥상머리이니 뭐라도 집어 먹긴 해야 한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냥 질려버리고 만다. 밥을 아예 먹질 말든가, 먹을 거면 적어도 숨을 좀 쉴 분위기 정도는 되어야 할 게 아닌가.
출퇴근이 정말 적성에 안 맞아서 회사원을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점심시간이 적성에 안 맞아서 직장인을 못 하는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다. 밥을 차라리 혼자 먹을지언정, 어색한 사람들과 식사 시간을 나누는 게 나에게는 가시방석에 앉는 것 같은 일이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어도 비슷하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어느 정도 친교가 쌓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거야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에서 즐겁지만, 아무 랜덤한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잘 체하고,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이 있으며 장염에도 자주 걸리는 내 체질 탓인지도 모른다. 밥 먹을 때는 최대한 편안해야 한 끼니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메뉴를 먹어야 하는 공식적인 점심시간은 아주 쥐약이다. 온 몸이 음식을 소화시키길 거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든 나쁜 습관 중에 하나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집에 들어가서 야식을 먹는 것이다. 야식을 먹는 동안은 온전히 혼자이고 내가 선택한 메뉴를 먹는 거니까 왠지 해방된 기분이 들어서 그러는 것인데, 당연히 건강에도 나쁘고 몸무게도 금방 늘게 된다.
예전에 어떤 인터뷰를 읽다가 어릴 때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게 힘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단체로 밥을 먹는 게 힘들어서 아픈 척을 하고 점심을 굶은 적도 있다. 어린 애도 아닌데 누구와 밥을 먹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나중에 직장을 구할 때는 점심을 같이 먹는 분위기가 아닌 곳으로 택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다(그런 곳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이런 이야길 들으면 또 내가 사람을 피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는 성격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맨날 혼자 밥을 먹으면 또 질려 한다. 무리지은 사람들 옆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나란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가 이렇게 힘들다. 하물며 삼시세끼 밥 먹는 일에도 이러니, 다른 일은 얼마나 까다롭겠는가? 내 비위를 맞추는 것의 가장 어려운 점은 내가 혼자 있으면서 동시에 누군가와 함께이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혼자이길 원하는 정도와 함께이길 원하는 정도가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이 두 요소를 저울질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하는 게 너무 지치고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혼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내 성격이다.
요즘에는 '조용한 관종'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이런 내 성격은 '북적이는 외톨이'이고 싶어한다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군중 속의 외톨이'? '혼자이길 즐기는 인싸'? 뭐라 정의하기도 힘들다.
결국 다니던 직장에서 나는 타협하여 점심을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혼자 먹으려면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 뒤에 혼자 남아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적당히 사람이 없을 타이밍에 식당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점심을 사람들과 같이 먹은 다음, 퇴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서 했다. 그래서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고 아주 애매한 시간에 집으로 향하곤 했다.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겠지만 나는 그만큼 함께이면서도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이고 싶어서 그렇게나 애를 써야 했던 거다. 온통 어두워진 퇴근길, 애매한 시간에 혼자 종종걸음으로 회사를 빠져나오는 내 모습을 가만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