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연 9화
상담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은 다들 외롭고 외로워서 실수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사람의 아이러니란 언젠가는 나쁜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의 나쁜 면모를 알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다가가는 걸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외로워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오래 가는데도 사람과 어울리는 걸 그만둘 수 없는 게 때때로 생각해보면 슬프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했는데,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 내 자신도 속지 않았다. 나는 온갖 말에 다 상처를 받았고 상처 받은 말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지나간 일이니까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이 그렇게 잊히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안다.
나에게는 유구한 외모 컴플렉스가 있다. 외모 컴플렉스란 내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상대방도 자신의 외모를 자각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있다고 말하기가 항상 껄끄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외모 컴플렉스가 흔하디 흔하다는 점을 아는 게 그나마 좀 안심이 되는 길 같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얼굴을 싫어했다. 체중이 불고 난 후부터는 내 몸도 싫어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외모에 말을 얹는 어른들은 정말 많았기에 나는 자라면서 내 외모가 실시간으로 평가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모가 항상 평가당한다는 것은 A에서 F 사이의 어느 성적이 외모에 매겨진다는 것인데, 수치로 된 성적이 그렇듯이 A+를 받지 않는 한 항상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하이틴물에서 카메라 초점조차 맞지 않는 등장인물일 듯한 나 같은 사람이 A+를 받을 리는 없고(심지어 외모 평가를 받는 게 기분이 나빴다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지금 내 외모를 비하하고 있다!) 늘 다른 평가를 받으면서 나는 내 외모의 부족한 점을 끄집어내는 버릇만 생겼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가시를 세우고 그런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기분이 불쾌하다고 말하는 법도 있겠지만 난 또 그렇게 못한다. 세상에는 사이다 서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다고 뭐고 물 한 방울도 못 마시는 사람도 있다. 막상 그런 기분나쁜 말을 들은 순간에는 갑자기 길 가다가 뺨을 한 대 맞은 사람의 기분이 되는 것이다. 길 가다가 느닷없이 따귀를 맞았는데 곧바로 반격이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무슨 봉변인가 하며 눈물만 떨굴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면 이런 말을 듣지 않는 두번째 방법이 있다. 언제나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나는 그랬다.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물로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가시를 세우고 있었더니 정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고 나는 급격히 심심하고 외로워졌다. 사람은 외로워서 실수를 한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다시 조용히 가시를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또 상처를 받으면 다시 나와 가시를 세울까 한참 고민하다가 외로움을 못 이기고 슬그머니 가시를 내리는 것이다. 나는 고슴도치로는 도저히 못 살 사람이다.
사람을 못 만나서 외로운 게 나은가 사람을 만나서 상처받는 게 나은가 여기서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둘은 다른 종류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불에 데이는 게 낫냐 칼에 베이는 게 낫냐는 논쟁과 다를 바가 없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상처받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일 테지만 그런 중도의 길이 인생에 있었다면 내가 일을 하다가 위염이 도져서 화장실에서 토하는 일 같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적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적인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람을 만나서 쉽게 상처받지 않았다면 글 쓸 소재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작가로 사는 게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지만, 작가로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작가로 사는 내가 성격이 이런 것이 문제에 가까울 테다. 고슴도치 컴플렉스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고슴도치는 못 되는 인간이다. 항상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니까. 그런 성격이 나를 차갑게 베고 지나갈 때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거나, 또는 어딘가에서 염증이 도진 채로 누워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기술이 필요한데 자꾸 고슴도치를 부러워만 하고 있다. 너는 보호할 가시라도 있어서 좋겠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