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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an 07. 2024

지옥에서 천장과 눈싸움하기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3화

한창 로스쿨에서 삶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무렵, 밤 늦게 보인 공황 증세로 응급실에 향했다. 다행히 심각한 공황 상태는 아니기도 했고, 벌이는 없이 공부만 하다 보니 재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대중교통을 꾸역꾸역 타고 응급실에 갔다. 아무래도 혼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친구를 데리고 갔는데 하필이면 그 친구가 갑자기 미열이 나는 바람에 같이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한창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높을 시기였다). 나는 응급실에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입원했고 정신과 의사를 기다렸다. 다행히 의사가 금방 왔고 의사와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


"어떤 점이 제일 힘드세요 지금은?"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뭐가 힘든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계속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에요."

"그럼 앞으로는 너무 깊은 생각을 하지 마시고 생각을 좀 줄이도록 하세요."


의사는 그럴 수도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고는 공황장애 약을 처방해 주었다. 굉장히 의미없는 대화를 한 기분이었다. 생각을 줄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생각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더 해줄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을 것이다. 공황장애 약을 가지고 다시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기분은 허무했다. 나는 그때 이미 정신과 약을 여러 종류 처방받아 먹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 불안 증상을 약화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딱히 바뀐 건 없는 느낌이었다. 아, 바뀐 게 하나 있기는 했다. 응급실 치료비 덕분에 가뜩이나 헐렁한 내 통장 잔고가 더 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부터 계속 몰두했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마음으로 공부에 몰입하기. 마음의 평화를 찾아, 그냥 평균 정도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공부하다 보면 옛날처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꾸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도 퓨즈라는 게 있다면 나는 이미 퓨즈가 끊겨 버린 것 같았다. 한번 과부하로 마비되어 버린 머릿속에는 신선한 공기가 잘 돌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 과부하가 심해지기만 했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여겼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원하던 것들을 이뤄 나가고, 거기에 더해서 내가 꿈꾸던 것들을 갖추어 나가면서 나는 점점 더 외롭고 쓸쓸해졌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온갖 의문이 나를 뒤덮었다. 이대로 정말 잘 졸업할 수 있을까? 졸업하고 나서 제대로 일은 할 수 있을까? 나는 평생동안 이렇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인생이 정말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애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서 분위기를 망쳐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되었다.


나는 나날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그저 온갖 나쁜 가능성과 부정적인 지점을 상상하는 것뿐이었다. 하루종일 누워서 그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 앞으로 또 지날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 끔찍해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살던 집에서 온갖 생각에 빠져 바라보던 천장. 살면서 가장 길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제서야 체감했다. 지옥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걸. 정말 많은 게 주어졌고 누구든 부러워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내 마음 속은 세상 어떤 곳보다 지옥일 수 있다는 걸.


지옥에서 완전히 녹아 없어지기 전에 나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도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것 역시도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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