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ghtly Apr 13. 2021

"너희가 내 꿈이다"

하나님은 어쩌면, 일의 성공과 성취를 바라시는 것이 아닌지도 몰라



하나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문득문득 생각하게 되었던 부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우주보다, 천하보다 귀하다고 생각하신다는데,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나?

아니 그전에... 나는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나?




나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 앞에 설 때면, 유독 막막함을 느끼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막막함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 자신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소모되어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대체 왜 그랬는지를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 착한 성품으로 인한 것도 아주 약간은 있을 거고, 그냥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명제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이상주의자로서의 성향이 있기 때문도 있고, (인정하기 어렵지만) 많은 부분은 그래야만 나의 존재가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을 희생해서 남들을 위해서 살아야만
내가 존재하는 것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했던 것 같다.



이에 더해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가 아닌 '주인'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십수 년에 달하는 신앙생활 동안,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을 '순종'의 개념으로 접근하고는 했다. 즉,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시각이 내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들에 중요한 선택들을 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 그 순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에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고통과 슬픔을 더 이상 참기 어렵다고 느끼게 된 어느 시점부터,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는 반항과 원망으로 변했다. 그전까지 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 삶의 모든 어려움은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래서 더더욱 순종에 집착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내 상태가 엉망일 때도 순종을 요구한 하나님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 깊은 곳에 감추어져 억눌려 있던 나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너무나도 고통스럽던 순간에도 도망치지 말라고 하셔서 매일 울면서 버텼고, 너무나도 싫고 증오스러운 사람들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 왔어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람들이 얘기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 보세요. 그 결과가 이거예요. 그렇게 버티다 보니 이제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아파요. 저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더 하고 싶지도 않지만, 설사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의지와 능력이 더는 없어요. 저를 보세요 하나님. 저는 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저를 이렇게 방치해두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원망해요. 그리고 만일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면, 솔직히 저는 더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저를 데려가주세요.'



그 후 나는, 한동안 반항심과 원망감으로 가득한 날들을 보냈다. 우습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마음이 더 이상 나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솔직하게 원망을 쏟아내고 제멋대로 살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언젠가 고민했던 그 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그 구절과 언젠가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해 주셨던 말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어 졌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단 한 구절의 말씀을 통해 돌과 같이 단단한 나의 생각에 균열을 만드신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크리스천의 삶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순종과 인내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며,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를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기도회를 하던 중 목사님께서 그러시는 거다. "지금 하나님께, 하나님의 비전(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세요."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하나님께 여쭤봤다. '하나님, 하나님의 꿈은 뭔가요?' 솔직히 답이 들려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증명할 수는 없다.)





내 꿈은,
너희들이다.
너희가 바로 내 꿈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혹시 대답하신다면 '열방의 복음화'라든지, '한반도의 통일'이라든지, '선교'라든지... 뭐 그런 것들을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꿈이라니. 이토록 부족하고 불완전한 내가,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꿈이라니.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는 증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마음과 생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어느 성인(십자가의 성 요한이 한 말이라고 한다)의 말을 생각하면서 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의 마음의 초점에 대해 내가 여전히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희생하고 나를 소진하고 나를 불태워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남들을 돕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뜻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를 망가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결코 아닐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과 성취를 위해 무리하며 나를 망가뜨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내가 성장해 나가면서 한걸음 한 걸음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 나가는 것이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로 그 날 내가 들은 음성이 착각이 아니라면... 나의 영혼, 나의 성장, 그리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꿈이라면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극단적으로 솔직하게 있는 것이다.



원망이 들면 원망을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말고,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할 것. 내가 진짜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

내 상태에 대해 늘 관심을 기울이고, 내 마음과 취향에 대해서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

순종에 대해, 지금까지 지녔던 그런 극단적인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

나는 노예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늘 기억하는 것.



성공이나 성취도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의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교회를 싫어했던 한 소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