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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Apr 17. 2021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게으른 사람은 쓰시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추천글을 보다가 갑자기 쓰게 된 글...)



오늘 할 얘기는 누군가에게는 좀 불편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간 나도 이러한 부분으로 인해 많은 고민과 고통을 겪었기에,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감히 이 주제에 대해 조금 얘기해보려고 한다. 그냥 우리가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왜냐면, 그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이 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 부분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우리 자신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아마 크리스천들은 이런 말들을 가끔 혹은 자주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한때는 이러한 기준들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그렇게 노력하다가 실패를 거듭할 때는 우울함과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들이, 특히 목회자가 얘기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조건'인 헌신과 섬김과 인내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오열하며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할 테니, 대신 저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라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그전에는 소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다가,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심각한 번아웃 증상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는 교회 안에서 요구하는 소위 말하는 '겸손과 순종'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얘기하고 권하고 받아들이는 그러한 명제들에 대해 반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고민한 것들을 나누기 전에, 조금 건방지고 교만한 얘기를 조금 하겠다.


수년간 내가 기도와 삶을 통해 분별한 내 비전 중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이다.(통일의 형태와 방식은 다양할 수 있어서 속단하기 어렵다.) 내가 이 비전을 확신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계기(간증)들이 몇 가지 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그래도 조금 이해를 위해 맛보기로만 언급하자면, 내가 그간 내 삶에서 모험을 거듭해가며 확인한 나의 비전에 대한 키워드는 '통일, 국제관계, 협상'이었는데, 이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순간들에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조금 요약하면, 나는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시험을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고시에 합격했고 (점수가 크게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 합격했고 (의도치 않게)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 두 번 들어갔고 (지명을 당해서) 외교부에 파견을 갔고 이 곳에서 (인정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이후에도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하다.)


자, 이정도면 여러분이 보기에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 외에도 조금 얘기하자면, 나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엿볼 수 있는 예언 또는 대언을 받은 적이 있다. 크게는 두 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고, 한 번은 아마 한 5년쯤 전이었다. 둘 다 엄청난 예언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실제로 나누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누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내가 왜 이런 부분들에 대해 나눈 후에 본론에 들어가고자 하느냐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대해 내 삶이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들어가야 내가 지금부터 나눌 생각들이 조금쯤은 더 와 닿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본론을 시작하자.



무엇보다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에 대한 것.



참으로 신기한 것이, 굉장히 많은 크리스천들이 (생각해보면 신앙생활을 막 시작했던 시절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쓰임 받는 삶'에 대해 갈망한다. (왜 신기하냐면, 쓰임 받는 삶은 정말로 힘든 삶이니까... 모세를 봐라. 그는 왕자로 길러졌으나 40년을 광야서 연단받았고, 이후에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고통을 받았다. 사도바울은 어떠한가. 그는 평생 하나님께서도 치유해주시지 않는 질병을 가진 채로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 외에도 사도들은, 매우 끔찍하고 잔혹하게 처형당했다. 우리도 사실 쓰임받는다고 생각할 때는, 영광이 아닌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젠가부터는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쓰시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저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요 하나님...'이라고 기도할 때가 많다고 하면, 너무 솔직한가?)



이 부분에서 갈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이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소망인 경우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갖는 '성공에 대한 갈망'이 종교적으로 표출된 경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소망인 경우들도 많다. 그러니까 (우리의 어둠에 빛을 비추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정직하게 보자는 거다.



대체, '쓰임 받는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유용한 삶?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하는 삶? 목회자나 사역자로서의 삶? 쓰임 받는 삶이 아닌 크리스천의 삶이 있는가? 다르게 질문하자면, 쓰임 받는 크리스천이 아니면 그 삶에 의미가 없는가?



내 질문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에 대해 평가절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자체로 충만한, 행위가 아닌 존재로서 완전하게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 받기 위한 동기 또는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 무언가 유용한 것을 하려고 하는 시도'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지를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부디 누군가가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Doing(행위)가 아니라 Being(존재)가 중요하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보다 우선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과의 교통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확신을 갖는 시간을 갖기를 권하고 싶다.(나도 지금 그런 시간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쓰임(또는 행위)'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전에 '존재(또는 정체성)'이 정립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임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누군가는 아주아주 의지가 강해서 오래 버틸 수도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거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면,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고통 뿐만이 아니라,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다.)



당신이 (당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하다는 점을 당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성령님과의 교통 가운데 사는 것이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쓰임 받는 삶'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하루 자체가 하나님의 동행이 될 테니까. (노파심에 말하자면, 내가 이런 삶을 지금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 정체성을 위해 씨름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겸손함'과 '부지런함'을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기를 바란다. 솔직히 얘기하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연단 과정을 거치고 나서의 상태를 귀납적으로 얘기하다 보니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쓰신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그런 상태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그렇게 타고난 것이 아니다. 부연하면, 내가 부지런해서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내 비전에 합당하고, (남들 보기에는) 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해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시고, 그를 자신이 원하시는 상태와 과정으로 이끌어가실만한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있는 분이다. 그러니 굳이 노력을 할 것 같으면, 그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미리 판단하거나 아니면 (성공주의와 성취주의라는 세상의 가치관에 저도 모르게 물들어서) 무조건 고귀하고 높은 소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하나님이 내가 이러이러한 것을 갖추면 나를 이러이러한 것에 쓰실 거야'라는 생각을 갖지 말고, 그냥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기를 권유한다.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당신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연단의 과정으로 이끄심으로써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하신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무너짐과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이 갖게 되는 믿음은, 결국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역사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은혜가 당신의 존재와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제발, 남들이 얘기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거나 무리하지 말 것.



그저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관계를 쌓아나가고,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그걸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쓰임 받는 삶이라는 것이 특별하거나 위대한 것이 아니다. 모든 크리스천의 삶은 (그것이 질그릇이든 금그릇이든, 깨끗하기만 하면) 하나님께는 동일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인 성공 야망과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깊은 소망을 구별할 수 있기를.


당신이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존재 자체로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 설사 당신이 교만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쓰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계획과 뜻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그러한 뜻을 알리시고, 이후 설득과 연단을 통해 당신을 겸손하고 부지런하게 하실 거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부분들을 당신이 노력해서 갖추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가실 능력이 있다. 당신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실제로 내가 그 대단한 예언과 대언들을 들었던 순간들에, 내 상태는 정말 처참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만들어 가신 것은 하나님이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오직 그분의 계획이 내 삶을 이끌어갈 뿐... 내가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이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와, 현재와,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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