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게으른 사람은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그동안 내가 고민한 것들을 나누기 전에, 조금 건방지고 교만한 얘기를 조금 하겠다.
수년간 내가 기도와 삶을 통해 분별한 내 비전 중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이다.(통일의 형태와 방식은 다양할 수 있어서 속단하기 어렵다.) 내가 이 비전을 확신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계기(간증)들이 몇 가지 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그래도 조금 이해를 위해 맛보기로만 언급하자면, 내가 그간 내 삶에서 모험을 거듭해가며 확인한 나의 비전에 대한 키워드는 '통일, 국제관계, 협상'이었는데, 이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순간들에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조금 요약하면, 나는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시험을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고시에 합격했고 (점수가 크게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 합격했고 (의도치 않게)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 두 번 들어갔고 (지명을 당해서) 외교부에 파견을 갔고 이 곳에서 (인정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이후에도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하다.)
자, 이정도면 여러분이 보기에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 외에도 조금 얘기하자면, 나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엿볼 수 있는 예언 또는 대언을 받은 적이 있다. 크게는 두 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고, 한 번은 아마 한 5년쯤 전이었다. 둘 다 엄청난 예언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실제로 나누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누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자 한다.
내가 왜 이런 부분들에 대해 나눈 후에 본론에 들어가고자 하느냐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에 대해 내 삶이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들어가야 내가 지금부터 나눌 생각들이 조금쯤은 더 와 닿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에 대한 것.
대체, '쓰임 받는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유용한 삶?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하는 삶? 목회자나 사역자로서의 삶? 쓰임 받는 삶이 아닌 크리스천의 삶이 있는가? 다르게 질문하자면, 쓰임 받는 크리스천이 아니면 그 삶에 의미가 없는가?
Doing(행위)가 아니라 Being(존재)가 중요하다.
당신이 (당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중하다는 점을 당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성령님과의 교통 가운데 사는 것이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쓰임 받는 삶'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하루 자체가 하나님의 동행이 될 테니까. (노파심에 말하자면, 내가 이런 삶을 지금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 정체성을 위해 씨름하는 과정에 있다.)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당신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연단의 과정으로 이끄심으로써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하신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무너짐과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이 갖게 되는 믿음은, 결국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역사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은혜가 당신의 존재와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당신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인 성공 야망과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깊은 소망을 구별할 수 있기를.
당신이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존재 자체로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