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 첫번째

공무원은 모두 철밥통이다?

by Brightly



오늘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공무원 정년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라서, 한 번쯤은 얘기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사무실 구성을 살짝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ㅇㅇ부에 구성된 범부처 TF라서, 구성이 조금 특이하다.)


ㅇㅇ부 심의관 1, 서기관 1, 사무관 1

ㅁㅁ부 파견 서기관 1

ㄱㄱ부 파견 사무관 1 (나)

석사학위 연구원

ㅁㅁ부 실무관 (계약직)




사무실에서 주로 떠드는(?) 사람은 저 중 ㅇㅇ부 사무관, 나, 연구원님인데, 사실 처음 시작은 정년 얘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대충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훨씬 길고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귀차니즘과 불완전한 기억력으로 인해 각색했다)


"저 요즘 이상하게 기력이 없어요."(A)

"이번 주 다음 주가 그나마 한가할 것 같으니, 휴가 좀 쓰셔요. 그럴 땐 쉬어야 해요."(B)

"맞아요, 증상이 있을 때 무시하면 안 돼요. 얼마 전에 누구누구 과장님 과로사하셨는데, 그전에 증상이 있었대요."(C)

"헉... 우리나라는 진짜...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몸에 무리가 될 정도로. 쉴 땐 쉬어야 하는데, 휴가는 권리인데, 분위기상 늘 눈치를 봐야 하고..."(B)

"맞아요... 내가 내 휴가 쓰는데 때로는 인격모독까지 당해야 하는 건 정말 별로인 것 같아요. 그래도 야근만 없으면, 이 일도 할만한 것 같은데... 저는 이 일이 재밌거든요. 공익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정부기관 중에 업무량도 적당하고, 휴가도 자유로운 곳이 있을까요?"(D)

"저도 동의해요. 저도 이 일이 천직이라고 느낄 만큼 좋기는 한데... 업무 강도가 가끔 심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쓸데없이 힘들게 하거나 쉬고 싶을 때 눈치 봐야 하는 것만 없으면 좋겠어요."(B)

"법제처가 괜찮대요. 권익위도 괜찮고."(E)

"선관위, 우정사업본부 같은 곳도 괜찮다는 것 같아요."(A)

"그런 부분에서는 헌법재판소 부설 연구소도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기 직장을 그렇게 칭찬하는 경우는 처음 봤어요. 거기서 일하려면 판사여야 한다는 점이 문제지만."(B)

"아, 들으셨어요? 얼마 전에 어느 부처 누구누구 과장님(?)이 코인 거래기관으로 이직하셨대요."(C)

"헉... 코인 거래기관이요? 굉장히 독특하네요."(B)

"그에 비해 ㅇㅇ부나 ㅁㅁ부 공무원들은 퇴직해봐야 갈 곳이 없어요. 기껏해야 방산업체이려나... 퇴직연령도 다 못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갈 곳도 없다니 슬프네요..."(E)

"퇴직연령을 못 채워요? 왜요? 공무원의 가장 큰 메리트가 그거 아니에요?" (C)

"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평균 근속연수가 25년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승진할 자리가 없으면, 자진 퇴사하도록 되어있거든요. 정년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해요."(B)

"놀랍네요. 그런 줄 몰랐어요. 정년은 당연히 보장된다고 생각했어요."(A)

"그렇지 않답니다... 근데 사실 다들 잘 몰라요. 특히 고위공무원단(1급~2급 상당)에 들어가고 나면, 2년 내에 보직 못 받으면 나가야 해요. 근데 고위직 자리가 잘 없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에 ㅁㅁ부에서 매우 유능하신 실장님 두 분도 안타깝게 정년이 한참 남았는데도 퇴직하시고..."(E)

"맞아요.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ㅇㅇ부 어느 국장님도, 자리 없다고 인사계에서 나가라고 눈치 주는데도 꾸역꾸역 남아있었다고 하는 얘기가... 정년까지 있으려면, 7급이나 9급으로 들어가야 해요."(C)

"그나마 ㅇㅇ부는 공관이 많다 보니 고위직 자리가 많아서, 정년을 대체로는 채우는 편인 것 같아요. 대신 자정작용이 잘 안된다는 게 단점이랄까요..."(A)

"고위직 자리가 별로 없어도 자정작용은 잘 안될 수도 있답니다."(D)

- 다들 웃음 -



이렇듯, 외부에서는 그저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된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고위 공무원들이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마치 권고사직처럼) 자진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평균 근속연수가 25년이라는 얘기는, 나이 서른에 일을 시작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55살에 퇴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퇴직연금 지급 시기는 퇴직연령을 넘어서는 65세 이후이기 때문에, 소득이 없는 상태로 수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고시 출신 공무원들은, 임용 직후부터 막연하게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빨리 승진하기 싫다... 가늘고 길게 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업무는 보람 있고 (힘들고 어렵지만) 때로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안정성과 워라밸만을 생각한다면, 고시를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닌지도 모른다. 차라리 7급 (또는 9급) 공무원 시험을 합격해서, 연차를 쌓아 나가면서 승진을 하고 정년까지 채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그래서 아주 가끔, 지인들에게 7급 시험을 추천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편이 더욱더 적성에 맞고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모든'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공무원법상 정년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3급 이하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사 체계와 조직 분위기상, 고시 출신 공무원이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슬프게도... 유능하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등 떠밀리듯 나가지만, 때로는 퇴직 후 어디 갈 곳을 마땅히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



여담이지만, 오늘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짬(?)이 높으신 서기관님은 '국세청 7급 공무원'을 최고로 꼽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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