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이 내 노력을 몰라주셔서 너무 속상해요."
언니, 바빠요?
어제 회사일로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전화했었어요.
그녀는 직장생활 3년 차.
올해 이동한 부서는 이전 부서들에 비해 업무가 어려운 편.
건별로 심사하여 처리해야 하는 업무인데,
처리가 쉬운 건과 어려운 건이 섞여있다.
부서를 옮기고 난 초반에는 쉬운 건들을 다수 처리하다가,
어려운 건을 하나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처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건을 붙잡고 있느라고 쉬운 건들도 처리를 못하고 있던 상황.
그 상황에서 팀장님이 단체메일로
그녀는 쉬운 건들만을 맡고,
나머지 사람들이 어려운 건을 번갈아서 맡도록
업무조정을 했다고 한다.
비록 팀장님이 원하는 것처럼 야근을 많이 해가면서 매달렸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 나름대로는 업무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그걸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고,
그래도 다른 동료들이랑 평균 처리건수는 비슷한데
자기만 후려치기 당한 것 같아서,
너무 창피하고 속상하다는 거다.
퇴사 생각이 들 정도로 멘털이 나갔다고...
엄청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까, 아니면 위로를 해줄까?
둘 다요. ㅎㅎ
나 : 일단 있잖아.. 네 맘이 충분히 이해가 가. 내가 모시는 상사들 성향이 그런 분들이 많거든. 그런데 나도 체력이 약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단시간에 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때로는 갈등이 있지. 나는 오히려 일을 빨리 끝내도 야근을 안 한다고 인정을 못 받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 여기서 상사들 '성향'이 비슷하다는 의미는, 야근을 많이 하는 직원을 높이 평가하고,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끝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 그래서, 여기서 네가 선택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네가 원하는 삶이, 자기 시간이 별로 없어도 일 부분에서 인정받는 삶인지 아니면 직장에서 인정 좀 덜 받더라도 네 시간을 갖고 여유가 있는 삶인지.
나 : 조직 내에서 일로 인정받고 어려운 일을 해내서 칭찬받기 시작하면, 사실 그런 일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수도 있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계속 너에게 맡기려고 하겠지. 그러니 네가 원하는 쪽이 일로 탁월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적당한 수준에서 '저 친구는 일을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야.'라든지, '저 친구는 일보다는 자기 시간이 우선이야'라는 느낌을 주는 게 앞으로 훨씬 편할 수도 있어. 당연히 자기 역할은 해야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 하고 싶느냐의 문제랄까...?
그녀 : 저는 인정받는 것보다는 그냥 1인분만 하자, 이게 평소 목표예요. 1인분만 하기에도 사실 힘들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이 일에 대해서는 야근을 안 하고 빨리빨리 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억지로라도 야근을 조금 해볼까 하긴 해요.
나 : 응. 그 부분도 얘기하고 싶었는데, 늘 너의 페이스대로 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때로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야근을 해서라도 끝내보는 그런 기간이 필요하긴 해.
그녀 : 그런데 사실 1-2월에도 야근을 많이 하긴 했어요. 이제 지칠 만큼 에너지를 썼는데... 팀장님이 그걸 안 알아봐 주는 거예요.
나 :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알아봐 주는 사람도 있을 거야. 몰라주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몰라주더라고. 근데 업무능력이 부족하다, 연차가 낮아서 경험이 부족하다, 이런 부분들은 사실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말해봤자 그냥 변명이 되는 거니까... 앞으로는 가능하면 네가 스스로 판단을 해서, 네 업무능력이나 여력에 비해 일이 무리가 될 것 같으면 상사에게 조정을 해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대충 상사가 원하는 기한과 네가 생각하는 기한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팀장님은 네가 일을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서 답답하다고 느낀 거잖아. 중간중간에 소통을 했다면 그랬을까 싶어.
그녀 : 이 업무가 완전 기한을 딱 지키는 게 아니고, 좀 늦어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게 저만 늦는 것도 아니고... 2월에 처리한 건들은 다 잊어버리시고 이 건을 오래 끈 것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팀장님이 완전 꼰대라, 소통이 어려워요. 그냥 바싹 엎드리고 '팀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이걸 원하시는데...
나 : 그래도 물어는 볼 수 있지. 언제까지 하기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사실 메일을 통해 업무조정을 한 부분은, 물론 과정에서 너를 존중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별로지만, 업무가 과중해도 조정해주지 않는 상사에 비하면, 오히려 낫다고 봐. 당연히 네 입장에서는 무시당하고 평가절하당한 것 같아도, 그래도 업무가 한결 수월해졌잖아. '힘들어도 어떻게든 해 내야 해' 또는 '넌 할 수 있어' 이런 말이 얼마나 지긋지긋한데. 관리자 입장에서 당연히 100점은 아니어도, 60점은 된다고 봐.
그녀 : ㅎㅎ 언니 '넌 할 수 있어' 이 말 많이 들었나 보네요.
나 : ㅎㅎ 눈 앞이 깜깜해서 힘들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조정을 안 해주고, 심지어 다른 사람 일까지 얹어주신 적도 있었지. 맨 정신으로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술 엄청 늘었어.
그녀 : 그렇군요. 저는 이 부서 오면서 월요병도 심해지고, 퇴사 생각이 너무 많이 나고, 우울감도 심하고... 뭐 모든 직장인이 힘들 테니 엄살 부리고 싶지는 않은데... 머리 쓰는 업무보다 단순 업무가 나한테 맞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 : 내가 지켜봤을 때, 너의 경우에는 그만두는 건 답은 아닌 것 같아.
그녀 : 왜요 너무 충동적이어서요?
나 : 응. 그냥 지금 지쳐서 그런 것 같은데. 그냥 '아, 내가 지금 지쳤구나... 몸이든 마음이든, 휴식이 좀 필요하구나' 이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아. 원래 지치고 피곤하고 우울하면, 좋아하던 것이라도 다 하기 싫어지고 그래. 업무조정으로 숨통이 좀 트이기도 했고. 네 말처럼 6월이 되면 그 팀장님도 다른 곳에 가시니까. 뭐, 어디가 아프거나 하면 질병휴직을 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지.
(* 나는 이 후배가 이 직장에 오기까지 대략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로를 고민하며 이쪽으로 온 것을 지켜봐왔기에, 이 직장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그만두는 것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삶의 목표가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면,
일을 잘하고 못하고
남이 인정해주고 안 해주고 그런 걸로
지나치게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받지 말자.
스스로 떳떳할 정도만 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