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는 모르겠고, 휴직하고 싶었던 적은 있지
너는 사표 내고 싶었던 적 없어?
응. 없어. 휴직하고 싶었던 적은 있었어도, 사표까지는... 나는 이 일이 천직인 것 같아.
천직이라니 좋네. 그렇지만 휴직이나 사표나 그게 그거지... 나는 사표 내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이야.
왜, 뭐 때문에 사표내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을 때.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 알잖아, 우리 하는 일들이 사장님들 바뀔 때마다 변동도 심하고, 정치적인 부분에 영향도 많이 받고... 그러다 보니 회의감이 들더라고. 게다가 우리는 특히 경직되어 있다보니 내가 뭔가를 건의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도 없고 바뀌는 부분도 없고...
그 마음 나도 너무 잘 알지. 나도 한 때 그런 마음을 많이 느꼈었고... 너도 알다시피, 내가 했던 일들이 좀 그런 일들이잖아. 정치와 정권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고, 때로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윗사람들은 본인 임기 내에 성과를 보일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정작 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어차피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때로는 잠깐 있다가 가는 사람들이지만, 나나 너 같은 늘공들은 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 상황이 변하더라도 중요한 부분들이 지켜질 수 있도로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 보이지 않고 티도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길게 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야지 하는 생각.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건 어찌 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니까.
게다가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할 말은 하는 편이잖아? 사실 나는 내 이런 소신이나 성격을 죽여야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했었어. 근데 최근 일하게 된 팀에서 모시게 된 윗분들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oo부에서 일할 때는, 내 이런 부분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이런 말을 늘 들었지. 그런데 지금 있는 곳에서는, 내 이런 소신과 신념과 전문성을 좋아하실 뿐만 아니라, 아주 높게 평가해주셔. 그리고 윗분들도 그렇게 자신들의 윗분들에게 소신대로 직언을 하시는 분들이고. 그러다 보니까 나는 다행히도 '아,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직언을 해 버릇하는 내 성향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정말 좋아해 주시고 인정해주시는 분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렇게 귀감을 보여주신 분들 덕분에, 공무원으로서 높은 자리에 갔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의 공직자가 될 지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달까...?
그러니까 길게 보자 우리. 좀 힘들겠지만, 우리 같은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으니까. 우리가 중심을 잘 잡자.
그래도,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믿는 수밖에는 없어.
해주고 싶은 것들도, 지켜내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으니까,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