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내가 이해하는 한, 말과 글을 통한 비판과 논쟁이 사람의 방법이라고 하면,
인내와 용서를 택하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복음 5:43-45]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제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복음 18:21-22]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힘써 행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기록되기를 "원수를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아 주겠다."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굶주려 있으면 먹이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 이로써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이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 12:2,14, 17-21]
예전에 전공 교수님 중 (논리적인 글과 토론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뛰어나신) 한 교수님이, "사랑이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분도 어쩌면 삶을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고민들을 하셨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말과 글로 무언가를 비판하는 방법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셨던 것은 아닐까.
용서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용서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어쩌면 너무도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더라.
내 이러한 선택에 대해서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신 싸워주기를 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과 글을 통해서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나 역시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러한 방법을 택하기에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과 부르심이 앞서 있고, 내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낫다는 것을 믿을 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