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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y 15. 2021

사람의 방법, 하나님의 방법

또 한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최근 사람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해, 다시금 묵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말과 글을 통한 비판과 논쟁이 사람의 방법이라고 하면,
인내와 용서를 택하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



부끄럽게도 나는 한 사람의 장성한 크리스천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함도 많고 미숙함도 많다. 그래서인지 노력하기를 더디 할 때면 쉽사리 원래 기질대로 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사실 늘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원래 기질대로 행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때면 더욱, 기질대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최근에 개인적인 이슈들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생긴 상황이었기에, 내 내면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동기나 의지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부끄럽게도 최근 몇 개월 동안은 비판과 논쟁이라는 부분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에 비해) 스스로를 그다지 제약하지 않았다. 나에게 부당한 일을 행한 사람들을 용서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딱히 애쓰지 않았고, 누군가를 대할 때 인내와 온유함으로 대하는 것 역시도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그럴 힘이 없었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미련하고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답답하고 억울할 바에는 말로든 글로든 풀어내야 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삶에서 예기치 못하게 발생했던 어떤 사건들과 그 과정에서 믿는 분들의 조언으로 인해, 내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금처럼 계속 사람의 방법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용서를 택할 것인가, 앙심을 품을 것인가. 인내를 택할 것인가, 비판을 택할 것인가.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릴 것인가. (사실 하나님의 길의 궁극은 '사랑'이지만, 사랑을 말하기에는 지금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상태라서...)



사실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길과 방법은, 아니라고 부인하기에는 너무나 명확하다. 용서하는 것. 그리고 축복하는 것.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것.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를 용서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시고 있고,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도들에게 원수를 축복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도, 사도바울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수준의 핍박과 모욕을 당하셨던 분들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햇빛을 비춰 주시고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복음 5:43-45]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여, 제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복음 18:21-22]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힘써 행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기록되기를 "원수를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아 주겠다."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원수가 굶주려 있으면 먹이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어라. 이로써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을 것이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로마서 12:2,14, 17-21]



하지만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느낀다. 늘 쉽지 않았던 선택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집을 꺾기까지는 참으로 쉽지 않았다. 비판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용서와 축복을 택해보고자 하는 지금도, 마음속에 갈등이 있다. 이게 맞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이지 하기 싫어서... (경험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축복하기 싫어서 울 때도 있다...ㅎㅎ)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아나가고 싶은 소망도 있다 보니, 하나님께서 내가 올바른 길을 택할 수 있도록, 돌처럼 굳고 딱딱하고 거칠어진 내 마음을 다시금 부드럽고 온유하게 만들어주시도록 기도하게 된다.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불이나 앙심을 품는 것은 너무 쉽고, 인내하고 용서하기를 택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말씀과 묵상과 기도가 없이, 성령님의 도움과 믿는 이들의 도움이 없이, 올바른 길을 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측면에서 (억울한 일이나 힘든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셨던 (나의 롤모델 중 한 분이신) ooo님과, 기도와 묵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oo언니와, 가족같은 마음으로 조언해주신 ooo님과,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통해 내 굳은 마음을 돌리고자 하셨던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응원을 해 주셨던 분들께도 감사하다.)



부디 이토록 부족한 내가 앞으로는 되도록 사람의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는, 지혜로운 딸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본받아서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이 가득한,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살아가면서 언젠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예전에 전공 교수님 중 (논리적인 글과 토론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뛰어나신) 한 교수님이, "사랑이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분도 어쩌면 삶을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고민들을 하셨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말과 글로 무언가를 비판하는 방법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셨던 것은 아닐까.
용서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용서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어쩌면 너무도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더라.
내 이러한 선택에 대해서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신 싸워주기를 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과 글을 통해서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나 역시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러한 방법을 택하기에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과 부르심이 앞서 있고, 내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낫다는 것을 믿을 뿐.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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