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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y 29. 2021

그들의 열매를 보고 판단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나는 한동안,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내가 그러한 위태로운 상태가 된 것은, 번영신학적인 가르침 때문이었다. 당시 어쩌다가 한 개척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청년들이 많은 교회였으며 설교 방식과 내용이 다소 독특하고 찬양이 뜨거운 교회였다. 그곳이 무언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분별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곳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내가 처음 들었던 설교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나는 그곳이 매우 순수한 교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 안에서 그간 내가 추구하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그곳의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내가 당초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나는 믿는 사람들의 삶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을 닮아 나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 즉 가진 것이 없고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는 삶이야말로 진정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라고 생각했고, 막연하게나마 나 역시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소위 말하는 '번영신학'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이 역시 오랜 시간을 거쳐, 나중에서야 분별하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되기 위한 '도구' 였던 것 같다. 그러한 내용이 워낙 교묘하게 숨겨지고 성경 말씀으로 포장되고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전달되다 보니, 나는 그것이 맞는 가르침인 줄 알고 조금씩이나마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간중간 나의 내면에서는 자꾸만 '내가 생각하는, 성경이 말하는 크리스천의 삶이, 정말 이 목사님이 설교하고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삶인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잘 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회 전체적으로 (은사도 있고 남다른 부분이 있는) 목사님의 말을 모두가 추종하던 상황이다 보니, 나 역시 차마 반문하지 못하고 떠밀리듯 그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 교회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에 버티고 버티다가) 겨우 그 교회를 떠나고 난 시점에 이미 내 안의 복음은 온통 변질된 상태였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을 알았을 뿐, 진리와 거짓이 너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 것인지를 도무지 분별해낼 수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정말로 끔찍하고 참담한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나는, 이제는 더이상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나 자신의 판단과 감정,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영적인 능력(은사)'가, 분별에 있어 어떠한 기준도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나 자신이 똑똑하고 판단력이 있어서 속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지만, 과적으로 나는 속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신앙생활 전체를 통틀어, 최대의 암흑기였다.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 안에서 다시금 어떠한 소망이 생겨났다.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내 안의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이라고 신음하듯 기도하던 내게, 교회를 다시 나가라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주셨다.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서 집 근처의 교회를 나가보았지만, 그곳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듣고 또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 중에 '성경에서는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말씀이 있지만, 우리는 먼저 된 우리가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하셨고, 성도분들은 아주 큰 목소리로 '아멘~'하고 화답했다... 정말... 너무나 놀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다시 교회를 가야 한다는 마음이 계속 살아났고, 고심 끝에 나는 (당시 교회 예배당을 갖지 않고 예배를 드리며, 담임목사의 세습 같은 것도 없이 운영되는, 청렴한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던) '높은 뜻 oo 교회'를 가 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행해지는 예배에 참석했다. 당시의 나는 심각하게 속았던 경험으로 인해, 이제 나의 판단도 나의 감정도 믿을 수 없었다보니 나름대로 경계심을 가득 품고 설교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설교 말씀이 좀 이상했다. 새로 오는 성도들이 많은 상황도 아니었는데, 목사님께서 '혹시 이전에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다면,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다. 입을 앙 다물고 꾹 참았지만, 어느샌가 내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설교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나 하나를 겨냥해서 하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어렵사리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 설교말씀을 통해서도 은사를 통해서도 제 생각이나 마음을 통해서도 목사님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통해 분별해야 하는 것인가요...? 대체 어떤 교회를 가야 하는 것인가요...?'



나에게는 절박한 질문이었기에,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묻고 또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드디어 내게 답을 주시는 듯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짧은 답변이었지만, 순간 그 말씀의 의미가 와닿았다. '아, 예수님께서 온유하고 겸손하시니 그분의 종들도 온유하고 겸손하겠구나... 놀라운 말씀이나 뜨거운 찬양이나 신령한 은사보다도, 성령의 열매, 즉 목사님들의 성품을 보아야 하는구나...'



이 때를 계기로 나는 교회를 정할 때, 목사님들과 (성도들의) 성품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더 이상 특별함이나 뜨거움을 찾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더불어서, '일단 말씀을 들어보고 판단하세요'라는 말이, 이단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라는 것도, '우리 목사님은 영적 은사가 있습니다'라는 말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성령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종종 '은사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이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게끔 만드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또한, (한때는 '대체 하나님께서 왜 내게 그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속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로, 언제든 속아 넘어갈 위험 가운데 있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마음에 욕심이 있는 한, 누구든 언제든 미혹될 수 있다는 것.
(당시 내게 성공에 대한 갈망이나 욕심이 있었다면, 나는 그 교회를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늘, 무엇보다도, 마음을 청결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14]



이 기회를 빌어, 모든 상황을 선하게 바꾸시며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만 긴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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