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의 이야기 2
그의 이야기 - 여수 밤바다
쿨의 아로하. 최근 어느 드라마를 통해 리메이크되면서 좀 더 유명해진 그 노래를, 그는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그는 아로하를 들으면 왠지 어디선가 따스한 햇볕을 실은 바람의 소리가 느껴지는 기분이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어쩌면 오늘따라 더욱 그렇게 들린다고 생각하며 그는, 조금쯤은 몽롱한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바다로 가는 거야- 너무 가깝거나, 너무 익숙한 곳은 싫어.... 여수는 어떨까? 조금, 아니 많이 뻔하지만 오디션으로 유명해진 어느 가수의,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노래 가사처럼, 여수 밤바다를 보러 가는 거야. 그는 잠깐 동안 깊이 생각한 뒤, 망설임 없이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게는 몇 없었던 - 계획이나 논리가 아닌 감정에 의존한 - 직관적인 결정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아무 의심 없이 예보를 믿고 흐린 날씨에 맞추어 옷을 입었던 그를 골려주고 싶기라도 했는지 - 그나마 그가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 여수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그는 일기예보의 부정확함을 늘 불평했지만, 오늘만큼은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서 너무 기뻤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에 어느새 그의 불평은 뭉게뭉게 날아가버리고 그의 마음에는 풍성한 낙관만 남았다. 어쩌면 나는 날씨 요정 인지도 몰라, 이렇게나 맑고 시원한 날씨라니. 그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입꼬리를 올리며, 이번 여행은 급작스럽게 결정한 것 치고는 시작부터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여행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그는 맛있는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 아니면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가성비가 훌륭한 현지 음식, 또는 반드시 다시 가고 싶어 질 만큼 인상 깊은 맛을 내는 음식... 그는 내려오는 기차에서 고르고 고른 여수 맛집들이 그중 하나에라도 해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좀 실망이었다. 블로그에서는 맛있다는 평이 그득그득한 돌게장 정식집이었는데, 글쎄... 맛이 없다기보다는 아무 인상도 남지 않을 만큼 평범한 맛이었다. 인사치레로 잘 먹었다고 말하는데 눈치도 없는 주인아저씨는 가게 명함을 건네며 배달 주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는 아마 여기를 다시 오거나 배달을 시키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아저씨.
"여기 혹시 맛이 어때요?"
애써 인사치레를 하고 식당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건네 왔다. 꽤나 보송보송해 보이는 플리스 점퍼를 입은 어떤 여성이었다.
"아니, 요즘에는 블로그 후기들을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렇죠..."
넉살 좋게 덧붙이는 그녀의 말에 그는 저도 모르게 공감을 표현했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떠밀린 듯이 그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맛이 없지는 않은데, 뭐랄까... 그냥 그래요. 건강한 맛이긴 한데, 너무 밋밋해서 다시 오고 싶어 지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다른 식당을 찾아봐야겠어요."
블로그 후기들을 못 믿는다더니, 오늘 처음 본 그의 말은 철석같이 믿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금세 멀어져 버린 그녀의 뒷모습을 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반했다던가 하는 그런 영화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쯤 신기했다고 할까. 낯선 사람에게 이토록 서슴없이 말을 걸고, 힘들게 찾은 맛집 - 블로거들은 분명 이 집을 '여수에서 꼭 가봐야 하는 맛집' 같은 표현을 써서 극찬했었다 - 을 이리도 미련 없이 포기하다니... 그는 그녀가 퍽이나 당돌하고 결심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라면 적어도 30초 이상은 고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낯선 사람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설사 물어봤더라도 분명 의심했을 터였다.
'당신은 너무 의심이 많아. 사람들이 구태여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자기가 너무 사람을 믿는 게 탈이야. 다 자기 같지 않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데.'
언젠가 누군가와의 대화가 잠깐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흐릿해진 기억은 마치 빛바랜 사진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 역시 내려오는 기차에서 - 미리 알아봐 두었던 바닷가 광장으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과 상쾌한 바람 - 너무나도 진부한 표현이었지만, 정말로 그러했다 - 이 약간 곱슬기가 있는 그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가 시원하게 넘겨주었다가 이내 변덕스럽게 흐트러뜨리기를 반복했다. 그는 변덕스러운 이 바닷바람이 마치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고자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에 눈이 부셔서 그런 것도 있었다. 연인들이 서로 속삭이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여수에 오기를 잘했는지도 몰라, 나답지 않은 즉흥적인 선택이었지만-
"아저씨, 이거 혹시 무슨 고기예요? 전어 있어요?"
수평선 너머로 해가 조금씩 기울어지는 바라보며 걷던 그는 왠지 귀에 꽂히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간판도 없는 어느 가게의 반쯤 닫힌 미닫이 문 너머로 보송보송한 흰 양털을 입은 그녀가 보였다. 잠깐,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듣자 하니 그녀는 전어를 사려는 것 같았다. 선어시장이 이미 영업을 마친 늦은 오후에.
"전어? 없어. 벌써 다 나갔어."
"그럼 뭐가 있어요? 광어는 있어요?"
"없어."
"없어요? 흠... 여기 이건 뭐예요?"
"그거 돔."
"무슨 돔이에요?"
"돔이 돔이지 무슨 돔이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쩍 들여다본 가게에서 그녀는 귀찮은 듯 건성건성 대답하는 아저씨를 붙잡고 끈질기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볕이 드는 곳에 말리려고 내어둔 도마를 들여 정리하던 아저씨는 손님을 받을 마음이 딱히 없다는 것을 티 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못 본 척 끈질기게 질문을 이어갔다. 역시 당돌한 사람이야.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이거 돔 그럼 한 마리에 얼마예요?"
"작은놈이 3만 원."
"이거 떠주세요 아저씨!"
"혼자 먹긴 많을 텐데..."
"괜찮아요 저 잘 먹어요!"
"아이참... 정리 다 했는데..."
간판 없는 어느 횟집의 주인인지 직원인지 도통 짐작하기 어려운 아저씨 - 주인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매출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직원이라 하기에는 회를 뜨는 솜씨가 유려했다 - 는, 투덜투덜 대며 뜰채를 들었다.
"에이 요놈들아 좀 비켜봐라, 저기 저 작은놈 잡게..."
걸리면 횟감이 되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돔들과 잠시 승강이를 벌인 후, 아저씨는 그다지 작지 않은 돔 한 마리를 건져내었다. 불쌍하게도 그물에 걸려버리고 만 돔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키며, 누가 들으란 건지 혼잣말인지 3만 원짜리가 도망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며, 이 놈은 적어도 5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하고 구시렁구시렁대었다. 툴툴대지만 정이 넘치는 듯한 분위기에, 그는 나중에 회를 먹고 싶어 지면 꼭 이 집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거기는 어디서 왔어? 여행 온 거야?"
"네 아저씨. 여행 왔어요. 서울에서 왔어요."
"거기 뒤에는 일행이야? 남자 친구?"
"네? 아뇨 저 혼자..."
그녀는 아저씨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다가 흠칫 표정을 굳혔다.
"어?"
"아, 저는 일행이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가..."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에 당황한 그는 우물우물 대답할 말을 찾았다. 당황스러워서 등 뒤로 식은땀이 주욱 흘렀다.
"그래? 난 또 뒤에 서 있길래 일행인 줄 알았지."
툭툭 회를 썰며 던진 아저씨의 여상한 말에 그녀와 그는 서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먼저 피식 웃었다. 그도 겸연쩍음에 따라 웃고서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잠깐만요."
"네?"
"혹시 회 좋아하세요?"
"회... 좋아하죠...?"
"지금 저 돔 혼자 먹기 조금 많을 것 같은데, 혹시 같이 드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