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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Feb 28. 2022

출산휴가에 들어가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국 코로나에 백기를 들었다


임신 중기에 접어들고 나니, 언제 휴직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져 갔다.


변수는 크게 네 가지였다.

1. 나의 몸상태
2. 휴직을 들어가기 전에 일을 더 하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
3. 출산 후에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
4. 회사의 인사이동 시기와 후임 문제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했던 것은 나의 몸상태였다. 신혼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편도로 1시간 정도 되었고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을 하던 나는 임신 초기에 만원 지하철을 타다가 심한 현기증으로 몇 번 쓰러질 뻔했었는데, (임신 초기에는 배지를 달고 있어도 양보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모성보호시간'을 써서 출퇴근 시간을 조금 덜 붐비는 시간으로 조절하고 나니 견딜 만 해졌다. 그리고 임신 중기에 들어서니 임신 초기에 비해서는 컨디션이 좋아졌기 때문에, 나는 '몸 상태가 지금만 같으면 일을 더 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어도 출산 예정일 한 달 전까지는 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한 달 또는 한 달 반 더 일을 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과, 가급적 늦게 써야 나중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쓸 수 있는 휴가와 휴직이 좀 더 늘어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가능하면 출산 후에 쓸 수 있는 휴가와 휴직 기간을 길게 남겨두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열심히 마이너스 통장과 담보대출을 갚아나가고 있는 와중에 소득이 갑자기 줄어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게다가 출산 후에는 쓸 곳은 늘어나는 반면 한참 동안 급여소득이 없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후임을 구하는 문제와 인사이동 시기 등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감사하게도 과장님의 배려도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인사 담당자와도 얘기가 잘 되어서 내가 원하는 시기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러하듯이,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코로나19.'


2월에 접어들면서 코로나가 갑자기 급증하게 되었고, 회사 내에서도 확진자와 격리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옆 과도 거의 전원이 격리되고, 언제 어느 때에 내 주변 사람들이 확진되고 격리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인터넷과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에 확진된 임산부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런 상황이 되니, 가급적 빨리 휴직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에 걸릴까 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언제 격리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는 내가 예정한 시각에 일을 마무리하고 휴직을 들어가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조금 무리가 되기는 했지만) 진행 중인 일을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초 계획과 다르게 2~3주 먼저 휴가 신청을 했다. 다들 그러하듯이 남아있는 개인 휴가를 쓰고, 그 뒤에 출산휴가를 붙이고, 그 뒤에 육아휴직을 붙여서 썼다. 개인 휴가 일수는 근무일수에 비례하게 책정이 되었기에, 출산휴가 기간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인사혁신처에 전화까지 했다. 그렇게 계산하고 또 계산한 끝에 오늘부터 휴가에 들어갔다.


몇 달을 신랑과 의논하며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도 변수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고, 결정과 실행은 빨랐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정하고 나니 후련했다. 이제 직장 내 확진자와 격리자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일을 언제까지 어떻게 끝내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제 정말 우리 은혜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어쩌면 앞으로 당분간은 누리지 못할 그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그렇게 휴가가 시작되었고, 오늘이 그 첫날이다. 심심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런저런 것들을 하다 보니, 하루가 금세 지나가는 느낌이다. 평온하고 기분이 좋다. 부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 시간들을 지혜롭게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잘 즐길 수 있기를.


직장생활 7년만에 첫 장기 휴가이다. 10년 넘게 일한 신랑이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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