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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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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r 04. 2022

갈치 소고기 랍스터

뉴발란스는 곧 비싼 똥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신랑은 결혼 전에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좋은 옷과 좋은 신발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결혼 전 신랑이 혼자 살던 원룸 방에서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우러 갔었는데, 그 코딱지만한 방을 가득 채운 신발 박스와 옷들에 어찌나 놀랐던지... 게다가 전자기기도 없는 게 없이 다 있는 데다가, 같은 게 몇 개씩 있어서, 내가 농담으로 '오빠는 없는 게 없어서 내가 사줄 게 없어.'라고 하기도 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옷들은 정리하긴 했지만, 거의 새것과 같은 신발들은 고스란히 신혼집 신발장을 가득 채웠다. 여자인 나보다 신발이 많은 오빠라서, 농담 삼아 '오빠는 발이 몇 개야?'라고 했더니 이제는 지인들에게 '아내가 나보고 지네냐고, 신발이 왜 이리 많냐고 그래'라고 말하며 웃고는 한다. (개인적으로 지네 말고 거미 정도...? 지네는 너무 징그러워.)


게다가 신랑의 새 신발들은 거의 다 브랜드/메이커가 있는 제품들이다. 들어보면 스타일링 필수템이라고 하는 유명한 제품들을 직구로 구매한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구비해둔 신발들을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거의 신지도 못했다. 착장만 했을 뿐 밖에서 신지 않은, 밑창이 깨끗한 거의 새 제품들. 오빠는 요즘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아마 짐을 줄이려는 의도 반, 최근 시작한 유튜브 촬영 장비를 구매하려는 의도 반인 것 같다.) 그 신발들 중 일부를 중고로 처분하고 있다. 물론 나도 대환영하는 바이다.


며칠 전, 신랑이 신발을 다섯 개쯤 들고 나와서 중고 사이트에 올리고 있던 때였다. 인기가 많은 신발인지 올리자마자 밤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사러 오겠다는 사람이 있단다. 게다가 프리미엄이 붙은 신발이라, 신발 가격 에누리를 조금 해주고서도 처음 산 가격보다 13만 원 정도 높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수익률이 상당하다고 말하는 오빠에게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다.


우와, 신발 테크 제대로 했네! 대단하다!
오빠, 그 신발은 언제 산거야?


신랑은 작년 7월쯤에 샀다고 했다. '얼마 안 됐네?'라고 묻는 내게, 신랑은 '아는 동생이 결혼하면 못 사니까 얼른 사라고 해서 샀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잠깐, 7월이면 우리가 결혼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오빠에게 말했다. '아니, 그럼 우리 한창 결혼 준비하고 있을 때잖아? 나는 아등바등 아끼고 있을 때 오빠는 결혼하면 못 살까 봐 신발을 샀단 말이지?' 신랑은 아차, 했는지 진땀을 흘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무렵은 신랑이 없는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나에 비해서는) 사고 싶은 것 다 사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나름대로 허무함을 많이 느꼈던 때였다. '결혼하면 어차피 같이 아껴 쓰면서 모을 텐데, 그럼 나도 그냥 마음껏 쓰면서 살 걸 그랬나... 나는 왜 그렇게 아끼면서 살았지..?' 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점점 신랑이 얄밉고(?) 괘씸해졌다. 그래서 신랑을 깔아뭉개며(?) 말했다.


오빠, 괘씸해서 안 되겠어.
나 그거 판 돈으로
갈치랑 소고기랑 랍스터 사줘.


신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발이 졸지에 비싼 똥으로 바뀌겠네!


그러더니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내게 신랑으로부터 카톡이 하나 왔다.


갈치 소고기 랍스터 값 입금했어.


계좌를 확인해보니, 미안해서인지 어제 그 신발을 판 값이 전부 들어와 있었다. 기분이 흐뭇해졌다. (절대 소고기 먹을 생각에 그런 게 아니야...!) 그리고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도 다음에 또 그러기 없기야~!)


갈치도 먹고 소고기도 먹고 랍스터도 먹어야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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