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과제 : 옥토밭 기경하기
성경 속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를 떠올릴 때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마음이 당연히 좋은 옥토밭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단단히 굳어 있는 길가밭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의 밭을 옥토밭,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으로 나누는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종종 밭을 돌보고 가꾸기보다는, “나의 마음은 옥토밭일 거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안심하는 편을 택하기 쉽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헛된 자기중심적 믿음이며 지독한 합리화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마음 밭이 길가밭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믿음을 회복하고 싶어 몸부림쳤지만, 그것은 나의 힘만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고 싶고 사랑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때로는 꼬여 들리기도 했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생각의 회로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마음 밭을 기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사랑 어린 손길과 기다림을 통해, 때로는 일상 속 작은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다루어 가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통하여 오기도 하고, 평범한 삶의 장면들 속에서 조용히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마음 밭을 기경하는 데에는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서로의 밭을 돌아봐 줄 이웃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한때 이것이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는 아닐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섬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서로의 마음 밭을 돌아보며 부족한 부분이나 조심해야 할 부분을 일러주고, 때로는 함께 힘써 밭을 가꾸어 가는 것이 이웃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나의 마음 밭이 누군가의 눈에는 부족하고 돌보아야 할 부분이 보일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사랑 안에서 서로 알려 주고, 혹시 나의 밭이 다른 밭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그것 또한 이야기해 주며 함께 반성하고 다시 밭을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지 “나의 마음 밭만 잘 가꾸면 된다”는 생각은 어쩌면 너무 평면적인 이해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하나님은 때로 주변 이웃들을 통해 지혜를 주신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억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방향을 잃지 않는다면 그 모든 과정조차 사랑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혀 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과정 속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영역마저도 함께 기경해 갈 이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상담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늘 믿고 싶다. 하나님 앞에서 중심이 올바르게 서도록 돕는 공동체 안에서, 악한 마음들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서로의 마음이 깨끗해지며 결국 옥토밭이 될 수 있음을.
누군가의 밭이 돌밭이 되고 길가밭이 되고 가시떨기밭이 된 데에는, 어쩌면 그 밭에 들어온 수많은 경험과 상처들이 오랫동안 자리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돌을 빼내기 어려운 것처럼, 깊게 박힌 상처 또한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밭은 날마다 옥토밭이 되도록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길가밭이나 가시떨기밭으로 정해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 채, 불편하더라도 지금 내 마음 밭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로의 마음 밭을 세세히 들여다보기에는 현실이 너무 바쁘고 팍팍하다. 그럼에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지혜는, 서로의 마음 밭을 돌아보고 함께 가꾸어 가는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마음 밭 또한 늘 지킬 수 있도록 되돌아 보는 것은 개개인의 평생의 숙제이기에 방심할 수 없다는 것. 방심하지 않을 수 있는 진실한 점검을 할 수 있도록 깨워주심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