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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ul 13. 2022

애써보는, 나의 멘털 일지 13

07.08


이리저리 감정을 어떻게든 중간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애써보고 있다. 


어차피 들었던 똑같은 소리였고, 똑같은 카운슬링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정말, 정말 뜬금없이 내 머릿속에 꽂혔다. 내가 이 감정, 이 불안과 공포를 조절할 수 있다고. 


그 카운슬링에 대한 상황과 어떤 말을 나에게 주셨는지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있는데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나지 않는데, 머리는 무의식으로 기억하는 것인가, 갑자기 그냥 그래 내가 "애쓰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쓰는 중이다.

공황이 오려고 하면 최대한 숨을 들숨날숨으로 조절해보고,

기분이 x 같으려고 하면 최대한 나는 이 기분을 다시 0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보고,

위의 둘도 안되면 다른 곳으로 정신을 빼돌리는 중이다. 


Fingers crossed.




07.11


취소 취소, 감정 공포 불안 조절은 무슨.


이제 저것들도 모자라, 화도 조절이 안돼, 분노 조절장애 생기게 생겼다. 갑자기 솟구치는 이 짜증스러움과, 민감한 소리들로 인해서 생기는 이 분노는 어디서 치고 들어오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나는 이 쓰나미 분노에 이리저리 몸을 온 동네 방 네로 쓸고 다니는 중이다.


약을 최근에 바꿨는데, 약이 나를 도와주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약이 나를 농락하는 느낌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약이 나를 농락하다니.


어제는 뭐 때문인지 확실히 답안 나오는 어떤 내 안의 문제로 미친 듯이 짜증 나고 괴로웠다. 왜 이딴 식으로 밖에 일처리가 안 되는 건지 짜증 나고, 저 인간이 내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먹으니 더 짜증 나고, 덥고 지치는데 말을 2번씩 해야 돼서 짜증 났다. 그리고 4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아니 내가 무슨 말하는지를 못 알아먹는 게 어쩜 그렇게 짜증이 나던지, 정말 죽을힘을 다해 정성스럽게 나의 화를 누르고. 잠깐 밖으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나가냐고 그것도 너 혼자?라고 묻는 인간에게, 여기 이 집구석에 있고 싶지 않아 잠깐 바람 쐬고 올게라고 하고 휙 나가버렸다.


나가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저녁 바람과, 테라스에서 와인과 맥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좀 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저 먼지 구덩이 아파트에 있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괜찮아지는걸......


이렇게 쭉 근처 산책길까지 가려고  열심히 걷고 있는데 저기 앞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강아지 케인 테리어가 같이 산책을 나온 걸 봤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유명해진 강아지 종인데, 항상 주차장 쪽으로 가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나에게 달려드는 아주 착한 강아지이다. 


그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입에 미소가 흘렀다. 이런 걸 신이 주신 지푸라기라고 하는 건가. 그러고 나서 그늘진 곳에서 약 부작용을 블로그로 찾고, 멍 때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또 그 강아지가 내 앞에서 산책을 다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세상에. 안녕.

아는척하고 싶었지만, 산책하고 스니핑에 여념 없는 강아지의 평온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웃으면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안녕해주고 보내줬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다시금 갑갑했지만, 그 강아지를 떠올리며, 올라가 다녀왔다고 했다.


다음엔 이름이 뭐냐고 물어야지. 

꼭.



07.12


이번에 바꾼 약의 부작용이 꽤나 심하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6시에 일어나 방광을 비우기 위해서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문의 나무 모양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부정맥이 온듯한 심장박동. 잠을 다시 청하기에는 글렀다.


이리저리 뒤 저 보니, 부작용이 꽤 확실했다.


영국의 법이 갑자기 바뀌어, 약에 대한 모든 문의는 의사가 아니라 약사에게 먼저 상담을 받도록 되어있는데, 이 NHS시스템 정말 죽이고 싶다. 이게 인격체라면 머리를 후려갈기겠다. 어차피 내가 받는 약은 다른 약도 아니고 SSRI종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기어코 마침내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예약해야 한다고 답변이 돌아오는데 기어코 이 돌돌 돌아가는 짓거리를 해야겠단다.


그리고 뱅글 돌아 의사에게 들었던 답변은 고작, 결국 로컬 센터에 문의와 상담을 받아보라는 허접한 이야기. 내가 그 센터에 전화만 두 손 두 발 다 들게 했고, 전화에서 받은 내용은 Online코스 비디오를 보고 4주 뒤에 봅시다 였다. 무슨 이혼조정 신청합니까.


나중에는 듣다 듣다 열이 받아서 이런 얘기를 하니, 어쩔 수 없단다, 절차가 이렇다고, 네가 굳이 굳이 원하면 정신과 의사에게 Referral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물었다.

자살충동이 있었느냐, 행동을 했느냐, Self harm 이 있었느냐, 언제 시작되었느냐. 등등 아니 이딴 건 이미 일전에 물어봤어야 되는 것 아니요? 


그러고는 한다는 얘기가,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너보다 심한 경우를 더 많이 봤고, 내가 이런저런 코멘트를 달아서 리퍼럴 넣어준다고 해도 그쪽에서 너한테 전화가 갈 확률은 낮다. 네가 아직 자살시도를 하거나, 몸에 칼을 댄 게 아니니.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지.


결국엔 나더러 그렇게 가고 싶으면 몸에 칼이라도 대라는 소리인가? 

이런 말 저런 말도 이렇게 받아들이나 저렇게 받아들이나 나름인 것은 맞는데,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결국 나는 내 몸에 칼을 대서라도, 강한 push를 넣어야 하고 내가 받고 싶은 약도 그렇게 해서라도 받고 싶으면 받으라는 얘기인 걸로 들렸다.


너희들이 얼마나 애쓰고 힘들고... 다 알겠는데, 그 말 한마디로 누군가 오늘은 죽는다. 그리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31도 오늘, 아 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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