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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ul 27. 2022

세이 굿바이.

약을 아예 끊은 지 2주째, Sober

오늘 카운슬링에 가서 선생님께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현재 2주간 약을 먹지 않고 있다고 얘기했다. 내가 5년을 넘게 먹었던 이 약을 이렇게 어이없이 끊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으며, 다 여기 x 같은 GP 의사 덕이라고 껄껄껄 웃으며 얘기해드렸다.


선생님은,

음.. 오늘 왜 그런지 Positive 해 보이네요.


라고 하셨다.


그 멍청해지는 약을 끊은 지 2주, 나는 200mg 설트랄린 그리고 어떻게든 먹어보고자 했던 Fluoxetine에 작별을 고했다. 




나는 약 없이는 못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이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SSRI 계열이라도 중독성이 없다고는 했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굉장히 많은 중독성을 보였다.


처음 약을 복용했던 상하이에서의 그날 2017년 나는 내가 이렇게 쭉 약을 먹으며 조절하며 살아가면 별 큰 탈 없이 나 자신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남에게 평가받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평가받을 일도 하지 않으며 그렇게 그렇게, 평온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굳건히 믿었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왜 약 없이는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냐고,


약을 안 먹으면 반응이 바로와 요, 감정의 소용돌이, 기복이 어마 무시해요.
이게 별로 제 인생에 도움이 안돼요.


진짜 그렇다 이런 감정 기복과 소용돌이 그리고 느끼는 것 자체가 별로 인생에 득이 되는 일이 없는 일이라고 배웠고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피해야 하는 것 중 하나라고 배웠다.


너는 너무 감정 기복이 심해.
너는 너무 민감해.
뭘 남의 생각을 걱정하니.
그렇게 감정적이어서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해.
그렇게 감정이 오가서는 성공적인 인간이 될 수 없어.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어른들과 친구 그리고 상사들에게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다. 

나쁜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나쁜 것이라고 느꼈다. 그냥 부정적이었다. 이게 안 좋은 것이구나, 나는 성공하고 싶다 잘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니 저런 것들을 없애야지. 


혼자서는 되지 않고, 조절이 안되니, 그럼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처럼 화학물을 사용해야겠구나.

이게 나의 Thought process 였다.


이렇게 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너무 일상이 편해졌다.

조금 더 냉정적으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미친 듯이 목을 조여왔던 그 답답한 무언가가 갑자기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25, 50, 75, 100, 그리고 마지막에는 200mg까지 하루 최대 사용량까지 약을 증량했고, 그냥 무사히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다.



하루에 200mg 1개씩


뭐 남들이 다아는 그런 성욕, 식욕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잠이 많이 오는 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내가 무슨 10대 20대도 아니고 저런 것 넘쳐서는 살밖에 더 찌나 하는 생각에 꾸준히 그저 모른척했다.


허,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기쁜 것을 기쁘다고 느낄 수 없었고, 슬픈 건 그 슬픈 것 그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이래도 아. 저래도 아.. 

정말 그 상태가 되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아무런 감정도 행복도 느끼지 못했고, 웃는 것도 잠시 20분만 지나면 다시 도루 아미타불, 걱정과 기우들이 넘쳐나 스멀스멀 부정적인 기운이 맴돌았다.


하루 종일 햇볕 한번 쐐지 못하고 그저, 먹구름만 잔뜩 낀 그런 나날들이 3년 이상을 이어지다 보니, 이게 뭔가 싶었다. 아 이렇게 무뎌지게 해서 100이나 -100을 살지 않고 정말 딱! 0만을 살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게 좋다고 그때까지도 믿었다.

내가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내가 결혼식을 준비할 때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뎠을까?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돈 때문에 우울했지만, 그래도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그냥 믿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외의 것을 생각하고 고려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잠잘 수 있는 에너지도 없는데 그딴 것을 어떻게 생각하랴.


대니가 직장을 정말 좋은 것을 잡았을 때에도, 

마침내 질질 끌었던, 돈 겁나게 든 비자를 받아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때에도,

지난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더 이상 아버지란 작자와 소통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에도, 

내가 꿈속에서 몇 번이고 죽였던 그 직장상사에서 벗어나, 락 다운된 중국 땅에서 떠버릴 때에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이런 여유가 있을 때에도,


나는 슬프거나, 기쁘지 않았다. 

멍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내가 나와 대니의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그럴 때에도 그냥 그러려니 할까.

동생이 직장을 잡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할 때에는?

나의 이상적인 상황을 드디어 내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에도 이렇게 멍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께 말했다 2주간 약을 먹지 않았다고. 서서히 1달 만에 끊었지만 4년을 넘게 엄청난 dosage로 먹었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선생님께 말하는 와중에도 머리가 휭휭돈다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그냥저냥 그렇게 민물처럼 살바에야 그냥 폭풍우 치는 바다 안에서 천둥번개 다 맞으며 그냥 그렇게 유유히 헤엄치는 동물이 되기로 했다고 했다.


머리가 더 깨끗해졌고,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 7월 26일 약을 끊은 지 1달이 다돼간다. 


가끔 찾아오는 공황 덕에 어찌어찌 가끔 생길 때마다 허덕 데는 심장을 달래려 Anxiety 약을 먹기는 하지만,

하루 하나 먹는 설트랄린, Fluoxetine은 손도 안된 지 깨끗하게 1달이 다되어간다.


가끔 눈알을 돌릴 때 핑하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그리고 나는 가끔 찾아오는 인간 Zoomie를 마음껏 음미하며 살다, 힘들면 다시 멍 때리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약을 먹을 때나 안 먹을 때나 아무 생각 없는 것은 똑같은데...

뭔가 더 인간이 된 기분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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