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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Aug 17. 2022

속 뒤집어지는, 나의 멘털 일지 14

속 뒤집어지게 뒤집어지는 이 뒤집어지는 나날들.

08.07


벌써 팔월의 첫 주일이 다 지났다.


분명 나는 다음 주에 로마로 휴가 겸 여행을 가는데 전혀 즐겁지가 않다. 이마저도 뭔가 부담이다. 약을 끊고 나서 1달이 넘어 지금 2달째로 가고 있다. 첫 3주간은 가끔 핑 도는 머리 때문에 불편은 해도 짜증이나 화는 나지 않았다. 그럭저럭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에 상당히도 마음에 드는 생활을 했다.


1달이 지나고 이제 2달.

정말 새끼손톱의 손톱 때만큼의 차이로 약을 다시 시작할까 했다.


울고불고 대니 앞에서 난리도 아니었다.


SSRI 계열의 약은 중독성이 없다고 했다. 다 거짓말이다. 이놈의 세상 큰 제약회사들이 사람들을 망치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Consipiracy라고 하는데 음모는 무슨, 팩트다.


중독성 있는 사람 몸에 좋은 약이라면 약을 끊어낼 때의 이 메슥거림과 속 뒤집어지는 짜증남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그리고 가끔 귀로도 들려오는 머릿속의 Brain zaps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먹지 않고는 잠재울 수 없는 충동과 화, 그리고 우울은 다른 어떤 NON-MED로는 해결이 나지 않는 것이 실정이다.


제약회사들이 벌어먹을 수 있는 돈은 이런 계열의 약에서 온다.

넷플릭스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 다큐를 열렬히 추천한다.


젠장맞을.



08.09


도대체 파이널 인터뷰만 몇 번째냐.


엄마에게도 몇 번을 말했지만, 이러다가 인터뷰만 주야장천 보는 인터뷰의 왕이 될 것 같다. 


인터뷰 기회가 잡히는 게 감지덕지할 일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인터뷰 프로세스를 몰라서 하는 배부른 소리다.


젠장. 이 더운 날에 셔츠 입고, 화장하고, 에너제틱하고 싶지 않은 이런 날에 어찌어찌 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까지 쥐어짜서 나와야 하는 Positiveness, energetic, Passion... 은 안 그래도 뒤집어지는 내속을 더 뒤집어 놓는다.


인터뷰 1시간을 주야장천 떠들고 나면 타는 목에, 아픈 편도에, 띵한 머리,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이 와중에 그래도 여자 몸에 원래 좋았다는 크랜베리 주스는 그나마 나의 메슥거리는 속을 덜 메슥거리게 한다. 


임신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인터뷰 하나를 끝내고 나니, 다른 리크루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 되냐고...


아 네, 되지요 되고 말고요. 

결국에는 이직을 마무리지어야 하고, 사고 싶은 것을 사야 하고, 월세 관리비,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이 어른은, 메슥거리는 속 뒤집어지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시 미팅을 잡고, 미팅 초대에 YES라고 답한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좀 덜 속이 뒤집어질까..

정말 뒤집어지는 하루다. 



08.14


난생처음 영국 남자와 사귀고 살면서, 영국 아닌 다른 유럽 국가에 놀러 갔다.

처음이다. 내 인생의 첫 유럽 국가이자, 첫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생각은 간단했다. 

목금 휴일 빼고 주말까지 끼워서 3박 4일, 그리고 일요일에 일찍 돌아오기. 

그 안에 로마만 가는 건데 뭐 별게 있으랴 해서 오전 비행기로 끊어 출국했다가 오전 비행기로 입국했다.


내가 말하는 오전이란 3시 반에 일어나 4시 반까지 공항에 도착, 그리고 8시에 이륙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33도를 웃도는 이탈리아 로마의 날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로마 치암피노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회했다. 오지 말걸.....


날씨 온도만 30을 웃도는 것뿐이랴, 내 나이도 30이 넘는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여기를 3박 4일 로오고, 바티칸시국도 돌고, 콜로세움, 로마 포럼,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pincio 플라자 등등을 다 돌자고 했을까.


무슨 배짱이었을까.

11일부터 13일까지 빡빡하게도 채워 넣은 나의 여행 일지를 보면서 치가 떨렸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하루에 10km도 넘는 거리를 걷겠다고 이리도 빡빡 히 짰을까.


10km는 솔직히 문제없었다 만약 내가 공황만 없어도, 불안장애만 없어도, E-Bike와 킥보드를 씽씽 달리며 이리저리 쏘다녔을 텐데, 차에 부딪치고, 사람에 부딪쳐도 뭐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그 정신으로 그냥 다녔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난생처음 종아리 근육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이렇게 짜증 나게 아플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 "정신승리"라는 것은 오직 20대까지만 허용된다는 것을 다시금 이 여행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다들 유럽권에 있으면 City break이라고 하면서 여기저기들 쏘다닌다던데,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라도 미래의 (어지간히 어이없게) 긍정적인 나의 야망을 꺾고 싶다.


파리는 더러워서 안되고

베를린은 인종차별 

빈은 비싸고 

바르셀로나는 너무 휴양지라 지겹고

프라하는 동유럽이라 그냥 그렇고

리즈본은 다들 너무 좋다고 해서 의심스러워서 안되고,

가지 말자 제발,


미래의 여행 열정 뿜 뿜 하는 나야, 이걸 다시 보렴.

너의 골반과 다리가 멀쩡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면,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48시간 이상이 걸리는 그 험난한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가지 마.......


폐의 염증은 덤이야.

얼렁 약이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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