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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05. 2023

두 개의 책상, 그리고 관찰

2023.01.04

싸구려 접이식 책상을 하나 샀다. 의자까지 같이 사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이전에 우리 아파트에 다이닝 테이블과 의자가 필요할 줄 알고 샀었던, 지금은 테이블 없는 의자가 남아돌아, 그걸 이 책상에 가져다 쓰기로 했다.


새해에 새로운 프레쉬한 느낌을 받고 싶어, 1일 전에 받으려 심지어 배송비도 6파운드나 주고 빠른 배송으로 시켰다. 


받아 뜯어보기 전에, 이미 어디에다 어떻게 둘까? 침대 있는 안방에 구조도 바꿔보고, 거실에 배치하는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이리저리 줄자도 꺼내어서 얼마나 사이즈가 될까 너무 packed하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배송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일전에 생각했던 배치와는 다르게, 정말 새로운 곳에 테이블을 놓았다. 안방에 놓겠다며 침대까지 구석으로 몰아넣고 청소도 다했것만, 결국 이 새로운 테이블은 거실 입구 구석에 놓였다. 


그렇게 나는 2개의 책상이 생겼다.



일, 잠, 일, 잠. 

이렇게 내 영국생활에, 내 인생에 일밖에 없는 게 허무했다. 일에서 그렇다 할 값어치 나가는 인간관계도, 매니저도, 친구도, 보람도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데 일밖에 없다는 게 너무 싫었다. 일이라는 고작 24시간 중 9시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이것이 나를 정의하는 게 허무하고 공허하다. 


컴퓨터 게임이 취미이자 특기인 남편의 말에 따라서 이리저리 취미를 만들어보려고도 했다. 십자수도 한번 해보고, 프랑스 자수도 한번 놔볼까, 영문 원서 읽으면서 공부나 할까, 아니면 나가서 뛸까 등등. 


모두 다가 별로 내가 1번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아이템들이었다. 


한 번은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시리얼을 붓고 바로 일하는 책상에 앉아서 우적우적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일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이 책상에 이렇게 붙어있을까? 도대체 이 일, 컴퓨터 책상 말고는 갈 데가 그리도 없나?

갑자기 짜증이 돋았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 더는 필요도 없을 것 같았던 새로운 책상을 질렀다.


이 새로운 공간을 위해서, 책상 말고 지른 건 없다.


나머지는 다 내가 회사에서 맥북 받기 전 썼던 나의 PC 노트북, 그리고 내가 끄적끄적 책에서 보던 말, 멋있는 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말등을 적어 내었던 노트북, 싸구려 펜 묶음, 그리고 남편이 쓰다가 이제는 안 쓴다며 나에게 준 터치식 램프가 다였다. 


그래서 나는 5시 5분, 로그아웃 퇴근이란 걸 하자마자 일 책상에서 나와, 나만의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브런치를 적는다. 이렇게 어둑어둑 한 영국의 저녁시간, 저 LED 램프를 켜고 내가 편안해하는 윈도 PC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으면, 나는 경림으로 돌아온다.


외국인들이 내 풀네임을 발음하지 못해, 쓰고 있는 나의 제2의 이름 Amy, 최근에는 너무 가짜 같아 싫어진 이영문 amy이름... 그 이름을 크고 넓고 좋은 일 책상에다 두고, 좋은 맥북 위에 두고와, 나는 싸구려 HP노트북, 싸구려 접이식 책상, 부식되면 곧 툭하고 어딘가 하나 나갈 것 같은 의자 위에 앉아서 글을 쓴다. 


오늘을 다시 아침부터 관찰해 본다. 


그렇게 나는 경림이 된다. 

나도 발음하기 껄끄러운, 우리 엄마가 말하면 그렇게 무섭고 싫었던 내 이름을 이 싸구려 책상에서 좋아하게 될 줄이야.



오늘 회사 책상 앞에서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작은 곰돌이 인형을 안고, 눈물 콧물 쏟으며 울었다.


갑자기 나의 1:1 미팅을 주관하던 manager가 오늘부터 나의 1:1 미팅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니어 매니저에게 전가하겠다고 슬랙을 보내왔다.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나는 "Uh Oh..." 하며, 큰일 났다 싶었다. 


그리고 갑자기 숨이 좀 찼다. 울고 싶었는데 울지 못하는 사람처럼 콧물이나 흘리면서 멍 때리다 남편에게 걸렸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뭐겠냐며,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남편에게, 말이 쉽다 하며 콧물과 눈물을 휴지로 닦아내었다.


결국에는 나와 꽤나 짧지만 깊은 인연을 맺은 non official uk 매니저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뭐 얼마나 문제해결이 되려나 싶었지만, 어찌 되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3 주내 내 나를 괴롭혔던, 화가 잔뜩 나, 울분을 토하면서 내뱉었던 나의 대사들은, 반쯤 회사를 퇴사하려는 사람에게서나 나올법한 차분한 말투로 변해 내입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달되었다.


물론, 역시나 문제해결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사람"과 1:1 미팅이 필요할 때마다 해내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더 이상은 울분에 치밀어 분노장애를 일으키는 사람처럼 말했던 나의 뇌 속의 그 목소리는 없어졌다. 


꽤나 Rude 하게 항상 내 스케줄표를 캘린더에서 볼 수 있으면서도, 내가 안 되는 시간만 골라서 미팅을 잡는 그 "사람"에게 슬랙이 아닌 이메일로 Decline과 함께 다른 미팅이랑 겹친다, 내 캘린더는 Up-to-date이니, 언제든 비는 시간에 미팅을 잡아줄래?라는 내용의 comment를 보냈다.


Respectfully Bitchin, 이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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