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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06. 2023

초대, 그리고 관찰

2023.01.05

1월에만 멘토 미팅이 4개나 잡혔다. 모두 다 내가 잡았다. 


새로운 년도, 새해라는 것이 참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어준다. 새해도 되었으니 나랑 함께 Coffeechat 어때 이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쉽다. 다른 달이었다면 조금은 더 거리낌이 있었을까?


이런 멘토쉽을 살짝 악용했던 2022년이었다. 순전히 일을 가지기 위해서 링크드인으로, 멘토십 플랫폼에서, 인스타에서 여러 소셜 플랫폼에서, 인맥 아닌 인맥들을 이용하고 남용했다. 멘토링을 목적으로, 그 사람과 정말 알고 지내기 위해서 시간을 잡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인맥을 잇고 이어, 일거리 하나라도 더 물고 오거나, 그 사람이 현재 일하고 있는 Firm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떻게든 힌트를 얻기 위해서 비디오미팅을 이용했다.


COVID라는 이름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쉬운 핑계 중의 하나였다. 


STUTZ의 Life force 중에서 people에 해당하는 그 어떤 것을 실행해보기로 했다. 그것 외에도 현재 다니고 있는 나의 회사의 디자인팀에서 정말 답답하게도 말 한마디 쉬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라도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긴 하다.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했다. Stranger과는 정말 말도 섞고 싶지 않고 눈도 마주치기 싫은 이런 극한의 내향인인에게 누군가를 나의 Circle안에 초대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초대해서 뭘 해야 하지?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눈은 어디를 봐야 하나. 이 사람의 반응이 미적지근하거나 나쁘면 그것에 대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어떤 모션을 취해야 하지. 왜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극내향인인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나의 온몸을 뒤덮고 나면, 초대는 개뿔, 인간의 인자도 보기 싫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가 보기 싫어서...


그런데 정말 그냥 갑자기 궁금했다.


나와 같은 직종의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산업군에서 일하는 그것도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여러 레벨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외계인이 아니라면, 일할 때 문득 드는 어려움, 고난, 생각, 의견 등등, 그들도 똑같은 혹은 비슷한 것을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 시간에, 그들은 나와는 달리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있을까? 나처럼 힘들어할까? 고민할까? 주저할까? 아니면 그냥 다 받아들이고 경지에 이른 사람처럼 행동할까? 무시할까? 


그게 그냥 궁금했다. 여러 의문문이 내 머릿속을 맴도는데, 도저히 이 많은 것들을, 입으로 내뱉고, 어떤 대답이든 간에 귀로 듣지 않으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져어 놓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이메일을 열어서, 인스타를 열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이러한데, 이러이러한 주제로 얘기 좀 나누지 않겠냐고. 


다행히도 내가 다가간 사람들은 웬만한 사람이었나 보다. 나쁜 X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먼저 다가와 PLEASE를 구걸하는데 안된다고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한데, 다행히도 아무도 없었다. 백중백발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내일, 이 무슨 인연인지 모를, 같은 동네에 어쩌다 보니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시니어 디자이너와 온라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비록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아니지만, 비디오로 보나 직접보나 뭐 다를까.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덜 세속(?)적인 마음으로, 어떻게 지냈냐고, 네가 나 같았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 같냐고 물어볼 작정이다. 항상 그렇듯 질문지도 적어놓았다. 내일 컴퓨터를 켜고, invite 보낸 미팅 링크에 들어가 나는 좋은 얼굴로, 좋은 마음 가짐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내이야기도 꺼내면 된다. 그리고 질문지에 있는 질문을 읽어내면 끝이다. 그렇게 사람을 초대한다. 


이렇게 초대하고 나누고, 털어놓으면, 제자리가 아닌, 어디로라도 가지 않을까? 

내일의 그 시간이 기대된다. 



4주 만에 의사 선생님과 다시 통화를 했다. 8시 15분,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지난 4주 동안은 어떻게 지냈는지, 나의 테라피 선생님은 나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한다고 하셨는지 등등을 말했다. 우울증세는 많이 호전되었다고, 테라피 선생님께 들었다고, 그런데 불안증세는 많이 갑자기 악화되었다고... 들었던 곧이곧대로 의사 선생님께 전달했다. 


선생님, 안 그래도 필요시에 먹는 약이 2알밖에 없어요, 그걸 더 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겠다는 말씀대신, 내가 매일 아침마다 먹고 있는 벤라팍신의 용량을 늘려야겠다고 하셨다. 


4주 전만 해도 이제 2주에 한 번이 아닌, 4주에 한 번만 보면 되겠다고, 호전되고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잘 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 충만했는데, 전화기로도 넘어오는 "아... 이런..?"의 느낌은 너무도 선명했다. 받아쓰기를 틀려 죽죽 빨간 색연필로 그어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용량이 늘었고, Prescription이 날아옴과 동시에 온라인으로 약이 청구되었고, 그다음 날 오늘, 바로 약을 배송받았다. 약 크기가 이전 약의 3배만 하다. 이거 과연 용량이 2배가 맞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증세를 악화시키는 회사의 프리미엄 Private 보험이 없었더라면, 이 약을 구매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약은커녕, 전문의에게 상담받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문의에게 상담받으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영국의 NHS시스템은... 공짜이긴 하지만, 한국의료시스템에 비하면 발톱 끝도 못 따라온다는 것을 참 많이도 느낀다. 


약을 2배로 늘리면, 미미한 나의 현재의 만족감도 2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여기에 적어놓고, 다시 아무런 생각도 없는 부러진 다리가 낫기를 바라는 환자처럼 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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