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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09. 2023

초콜릿, 그리고 관찰

2023.01.08

딱히 어떤 주제가 생각나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그냥 뭔가 다 맹숭맹숭하게 평탄하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나간 그런 날. 


아무것도 재밌는 게 없었고, 좋은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우울, 슬플 것도 하나 없었던, 그런 날들이 있다. 항상 무언가 그게 나쁜 것이던 좋은것이던간에 사건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나 보다. 그래야 인생이 충만하고 풍만해진다고 생각해왔나 보다. 


항상 분노, 우울, 슬픔, 억울, 분함등을 글에 녹여 써내기 바빴던 2022년이 있었다. 지난해 1월을 맞이하기 전 12월에 돌아봤던 도저히 눈뜨고 편안히 봐줄 수 없었던 내 글들은, 항상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나의 손가락이 부서질 듯 쳐댔던 키보드질로 탄생했다. 나의 경림 책상 앞에 앉아서, 가만히 컴퓨터를 바라보고 스크롤질을 좀 하다가, 생각나는 주제가 뭐 어디 없을까, 내가 오늘 지내왔던 아침 눈뜬 그 순간부터 지금 날이 저물고 있는 시간까지를 주욱 스쳐 지나가 보았다.


별일 없었다.


정말 이렇게 별일이 없는 그런 날도 있구나. 이렇게 별일이 없어도,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지루하고, 웃기지도 않는 삶을 살까." 하는 그런 생각이 없는 그런 날도 있구나 한다.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 반갑다. 



나는 다른 사람, 여자들과 다르지 않게도, 평생 다이어트를 해왔다. 지금도 하고 있다.


초콜릿이나, 단거를 먹는 즉시 항상 올라오는 뾰루지 덕택에, 나는 평생 초콜릿의 "초"자도 입에 잘 대본적이 없다. 정말 정말 미친 듯이 생리기간에 뭔가 무엇인가를 입에 넣고 싶은데 딱히 배는 고프지 않고, 자극적인 게 당길 때면 한 조각씩입에 넣어주는 것이 다였다.


혹시나 아침마다 먹는 시리얼에도 초코가 들어갈까 항상 콘플레이크 중에서도 설탕 없는 것, 그래놀라에서도 초코 맛없는 과일 맛만 주야장천 먹어댔다. 누군가 내 앞에서 특히 우리 in-law 팡 오초콜라, 혹은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면, 윽 저거 먹고 어떻게 또 밥을 먹지 그런 Judgemental 한 생각이 항상 내 맘속에 맴돌았다.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하고, 심리 테라피 선생님께서, 나 자신을 전치 60주가 넘는 다리가 댕강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있는 환자라고 생각하라고 하셨을 때부터였다. 갑자기 반항심이 차올랐다. 나이가 이제 30인데, 이십 대만큼 호르몬도 왕성하지 않을 텐데, 초콜릿을 먹으면 뾰루지가 올라와봤자 얼마나 올라오겠냐고, 12월인데 크리스마스에 다들 먹는 초콜릿 나도 먹자고... 그렇게 초콜릿과 초코맛 스낵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초콜릿, 페레로로쉐 두덩이, 초코 시리얼 한 박스, 초코라테, 초콜릿우유(우유 먹으면 설사까지 하면서도 끝끝내 한통을 비웠다.) 그렇게 1주가 지나고, 나는 선생님께,

이런 말 할 줄 몰랐는데, 초콜릿이 제 삶을 좀 낫게 만드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웃으셨다. 나도 웃겼다. 말도 안 되는 평생 입에도 안 되는 초콜릿을 먹고 인생이 나아지는 것 같다니. 6년간 먹어왔던 약들과 써왔던 돈들 앞에서 우습게도, 그렇게 쉽고 간사했다.


이제 내 아침 시리얼에는 애기들이나 먹을 법한 후르츠 맛 시리얼과, 약간의 초콜릿 쿠키만 시리얼이 석여 있다. 초코를 환장하는 대니와 함께 먹는다. 이제는 죄책감 따위 들지 않는다. 


나는 이번해, 다이어트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게 목표이다.

그 목표라는 것을 그래도 일찍 세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영국은 설탕 및 칼로리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나서서 절제하라고 하는 그런 건강한(?) 국가이다. 미국과는 달리, No sugar, 제품이 많고, Sweetner를 사용하는 제품이 거의 대부분. 


어째 이런 엉뚱한 부분에서, 궁합이 맞는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만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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