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09
PTSD라는 단어는 PTSD라고 진찰을 받은 진정한 환자가 아니면 써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정말 이 단어는 쓰지 않으려고 했다.
오늘 심리 선생님께 이단 어를 쓰면서, 그 사람과 같은 방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같은 미팅 ZOOM방에 있었음에도, 말 한마디 섞지 않았음에도, 너무 불안하고, 불편했다고 말했다. 정말 모니터에서 가시 같은 뾰족한 것이 내 눈앞에 1m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나를 찌르려고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가슴이 간질간질, 심장을 떼어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
PTSD라는 단어가 아니고서야 이런 느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결국은 언급해 버렸다.
내가 정말 어른이 덜 된 것일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저번엔 Racist, sexist 남자 보스 더니, 이번엔 다양성을 추구하는지 여성 white 매니저가 나에게 또 이런 x 같은 경험을 선물했다.
이 정도 되면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내가 리액션을 잘못해서, 혹은 내가 바보라서? 아니면 내가 그냥 그런 것만 꼬이는 그런 사람이라?
갑자기, 왜 내 탓이 되었을까?
선생님께서는 이쯤 들으시더니, 사람들은 그런 비슷한 안 좋은 경험을 겪으면, 받아들이는 방법이 다 다른데 어떤 이들은 나처럼 Coping mechanism이 자기의 탓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때 그곳, 그 시간, 그 사람 앞에서, 그때 그 정황과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던 나에게, 내가 그 힘듦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그냥 내 탓뿐이었나 보다.
내 앞의 저 사람은 나보다 윗분이시고,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내 Position과 직업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어찌한다 한들, 누가 내 말을 들을 것이고 내 뜻을 알 것인가.
내 탓 말고도 내가 하는 방법은 피하기.
이 상황과, 이 팀, 이 사람을 피해야 한다. 계속해서 나의 캘린더는 들여다보지 않고 더블 부킹을 하는 이 매니저에게 안된다고 2번 이상하다가 결국은 내가 그냥 제 풀에 죽었다. 나중에는 미팅 들어오면 그냥 받아야지 했는데, 더 이상 1:1 미팅 요청이 또 없다. 하. 이상한 사람...
이쯤 되니, 내가 왜 이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이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해야 하나 싶었다.
그럼 내가 나가야지 뭐.
선생님께서는 그게 좋은 답이 아니라고 하셨다.
날더러, 그 사람을 만나서, 나의 의견, 내 생각을 표출하라고 하셨다. 글쎄,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 사람에게 내가 미팅을 요청해서 만나야 된다는 상상을 하니, 곧바로, 호랑이 굴에 알아서 "나 들어갈게!" 하는 내 어리석은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라도 굴에 들어가 뭐든 하고 나와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나아진다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면, 뭐든 하겠으나, 이것만큼은 못하겠다.
갑자기 뭔가 Defeated 된 느낌이다.
오늘 내가 나 스스로를 실망시켰는지, 아니면 이것도 또한, 그저 내 눈앞에 있는 나의 심리상담 선생님의 요구에 부합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실망감과, 좌절감을 안긴 건지, 곰곰이 관찰하고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