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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08. 2023

나의 손톱, 그리고 관찰

2023.01.07

중학교 때 친구와는 놀기 싫고, 엄마와는 있고 싶고 할 때마다,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손톱관리를 하러 다녔다. 사람의 인생은 손에서 보인다나 뭐라나. 


대학교 때도 알고 지내던 반 친구들 모두 어딘가 네일숍에 1달치 회원권을 끊어놓고, 매주 색깔, 디자인, 큐빅 등등을 바꾸면서 다니는 애들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때 당시 나는 점심밥 먹고 마시는 커피마저도 아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기도 했고, 키보드 치는데 손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주욱, 내 손톱은 항상 지나면 짧아져있다. 손톱깎이용을 다시 사기도 너무 귀찮아서 항상 발톱 깎는 크나큰 발톱깎이로 악착같이 잘라내었다. 조금이라도 길어져 있으면 불안할 때마다 살을 뜯고, 입에 손톱을 대지 못해 안달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손톱이 조금이라도 길으면 잘 때마다 잠꼬대를 그렇게 한다. 남편의 말로는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내가 손톱으로 내 팔을 쓱 쓱 긁는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할 만도 한데, 내 옆에서 잔이 모두들, 엄마, 남편 둘 다 그저 조용히 내 팔을 내려준다.


키보드 치는데 조금이라도 손톱이 키보드에 닿아서, 조금이라도 타자가 늦어지는 것 같다, 혹은 손톱의 타다닥 소리가 난다 치면 항상 깍이와 갈이를 옆에 놓고 갈고 깎았다. 


그냥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안 그래도 내 인생, 짜증 나고 예민한데, 머리, 손톱, 발톱, 피부, 이딴것들이 내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이런 것이라도 좀 통제가 잘된다면 안 그래도 힘든 내 인생, 그래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렇게 조그만 것에 신경 쓸시간에 일이라도 한번 더하고, 영어라도 한 글자 더 보면 뭔가 빛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제 처음 잠에 들기 전에, 폰을 열심히 하다, 화면에 타자를 칠 때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있는, 갑자기 어느샌가 길어져 있는 내 손톱들을 보았다. 

어? 언제 이렇게 길었지? 


그리고 문득, 이 정도 길었으면 내가 꽤나 오랫동안 내손톱을 안 잘랐다는 거구나, 여기에 신경을 안 썼다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기특했다. 그냥 그 순간에 왠지 모를 만족감이라는 것이 부풀었다. 아주 살짝. 




요새 요가를 매일 하고 있다. 


하루에 60분짜리 80분짜리 매일매일은 못해도, 무조건 15분 자리라도 보면서 몸을 풀어주려고 하고 있다. 항상 어느 때나 30년간 다이어트이기만 했던 나의 운동은, 이렇게 항상 언제나 하찮기만 했던 나의 기분과 정신을 풀어주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이게 바로 나이 듦인가. 


공부, 일, 배움 이런 것들은 하고 또 해도,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는 생각이 항상 많았는데, 운동은 다르다. 특히 요가는 참 달랐다. 하루에 10분을 하던 80분을 하던 어떻게든 하면 다음 시간에 나의 오금은 더 풀어져있고, 나의 다리는 더 벌려져 있다. 하면 할수록 참 뿌듯한 그런 운동이다. 


항상 보면서 따라 하고 있는 요가 선생님이 어느샌가 80분 자리 새로운 루틴을 올리셔서, 바로 자리를 잡고 그걸 따라 하는데 이전 같았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후굴각과, 절대 버틸 수 없었던 그 3분이 버텨지고, 그렇게 금세 80분이 꼬박 정성스레 채워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시원하다.


그리고 10분 동안의 사바사 나동 안, 내가 꽤나 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 영국이라는 곳에 있으면서, 요가 말고도 얼마나 새로이 한 게 많은가. 


내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아시안국가에서 어느새 갑자기 터진 글로벌 자연재해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나는 서쪽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나의 사는 생활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길에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다 어느샌가 White 밖에 없고, 따라야 하는 룰, 절차 policy는 여과 없이 정반대였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 그것도 White 사람 천지인곳에서 전형적인 아시안 여자애가 모든 이 앞에서 쭈굴거리며 하는 미국식 영어는 아무짝에 소용이 없었다. 내가 10여 년간 머리 터지고 쥐 나게 배웠던 중국어는 왜 배웠는지... 쓸 일이 없었다. 


내가 이곳으로 와서 받은 Benefit이라고는 글쎄... 이 나라의 국적을 가진 남편? 심지어 얘도 나랑 처음 하는 것이 너무도 많아 항상 같이 헤매기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직업도 바꾸고, 사는 곳도 바꾸고, 보고 사는 사람도 바꾸고, 그렇게 또 어떻게 취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항상 멘땅에 헤딩하듯이 이게 나의 숙명이려니,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기에서 사는 하루하루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막 속에 나를 가두었다. 벌세우는 것처럼 나를 독방에 가두었다.


왜 더 못하지,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이렇게 될 줄 몰랐나, 왜 준비도 없이 왔니, 대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더 해왔어야지, 이런 것도 생각 안 하고 그냥 온 거니,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이니, 네가 과연 여기서 그게 될 것 같니, 남편 가족들도 너 싫어해, 불편해해, 너는 짐이다, 너는 부담이고 우울이다..... 이런 글만 벽에 적어놓은 그런 곳에 나를 집어넣고 살았다. 


내가 이때까지 경험하고, 해온 것은 모두 당연히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것이고, 이 학벌에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고,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그렇게 다그쳤다. 

얼마나 증오하고 싫어해야 누군가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근데 그 누군가가 심지어 나였다니. 

오글거리고, 나는 그래온 적 없다는 핑계,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그런 핑계로 항상 기특하고 뿌듯했던 그 조그만 감정을 항상 어떻게든 짓밟았다. 이렇게 작은 것에 기뻐하고 뿌듯해하면, 큰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며, 더욱더 나에게 엄하게 대해야 내가 조금 더 잘하려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앞으로, move forward 하기 위해서는 학대가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길에 피여있는 조그마한 새싹이라도 보며,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제야 배웠다. 


하루아침에 바뀌면 내가 내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작했으니 좀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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