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9
어제의 우울이 지나간 후에도 싸한 기운은 여전히 그대로다.
어제의 구조조정 후, 여러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그랬다.
네가 나간 것도 아니고, 네가 잘린 것도 아닌데 왜 네가 울고 네가 슬퍼하냐고.
혼자 봇물 터진 것처럼 눈에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윽윽 울고 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더 외로웠다. 갑자기 어깨가 너무 시렸다. 몸이 아프고 잠을 자는데 식은땀이 났다.
나와 나의 EMEA 팀모두가 이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던 그곳에서, 그 팀에서, 그것도 시니어매니저급부터 굉장히 Rare 한 포지션이었던 팀원이 잘려나갔다.
잘렸다는 통지와 동시에 HR 미팅이 이루어지고 노트북에서 뭘 할 새도 없이 바로 Shutdown 된 그런 상황을 옆에서 듣고 보는데 아무 감정이 없으면 그거야 말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그래도, 다른 이가 한 말에 동의한다. 내가 지금 닥친상황은 Bad일지 몰라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Worse 한 상황에 처해있다. 아무리 회사에서 Severance 등등 서포트를 해준다고 할지언정, 당장 자기가 몸과 마음과 에너지를 담아 일했던 직장만큼이나마 힘이 될까.
오늘 아침, 전혀 타격하나 입지 않은 EMEA 오피스와 나 포함, 런던팀은 아무렇지 않게 미팅을 하고, 일을 했고, 어느 한 사람도 어제 일에 대해서 대놓고 물어보는 이 하나 없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돌아가고 있는 회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하고 있는 회사 직원들, 비어있는 빈자리.
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는 보여도, 느껴지진 않는다.
구조조정이 일어나면, 큰 회사들은 보통 이렇게 타운홀을 열어서 이것저것 질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도 CPO가 나와서 줌을 켜고 몇백 명 가까이 되는 미국지사, 영국지사 등등의 지사의 직원들 앞에서 질답시간을 갖는데, 그중 한 사람이 Negative 한 피드백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물었다.
Negative 한 피드백중의 하나는
"그렇게 몇백만 달러 들여서 오피스 늘리고 꾸미고 하더니, 직원을 이렇게 자르냐, 굉장히 영악하다." 뭐 이런 식의 답변이 달렸던 것 같다. CPO는 그 질문을 읽자마자. 이런 질문은 별로 건설적이지 못하다며, 그다지 답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뭐가 저렇게 당당한 걸까. 답변하고 싶지 않아도, 정작 우스꽝스러운 질문이 날아들어와도, 건전하고 정성스러운 자세로 사람들에게 의견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C-level의 자리라고 나는 그렇게 배웠다.
아무래도 미국의 저 사람, 아니 미국은 뭔가 달리 배웠나, 어떤 피드백을 원했던 걸까?
자른 사람들에게 3개월치 보상해 줘서 고맙다고?
그래도 잘린 사람들인데도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잘 모르겠다. 정나미가 떨어져서 더는 저 사람이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머리에 담아두고 싶지 않았다.
타운홀이 끝나기 몇 분 전, 나는 미팅을 꺼버리고 바로 일에 몰입했다.
어제의 타격이 있어서 그런지 매니저들도 다른 팀원들도 그다지 나를 찾지 않는다. 다른 어떠한 notification도 없고, 메일도, 슬랙도 없다.
일을 빨리 끝내고 업데이트한 레쥬메를 들고 내가 딱 8개월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로 링크드인에 들어가 지원서를 하나하나 넣었다.
나는 무슨 회사, 어떤 팀, 어떤 팀원들을 원하는 걸까?
어디에 있어야 내가 나 같을 수 있고, 일하는 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유토피아를 원하길래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어느 회사가 Perfect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기회를 통해서 나는 내가 원하는 TOP 3요소를 손에 꼽을 수 있게 되었다.
1. 다가갈 수 있고,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매니저, 내성적임을 이유로 자신의 일을 미루지 않는 리더십
2. 시니어 팀원의 존재감 및 더 할 수 있다면 멘토쉽
3.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존재인지 아는 다른 Stakeholders.
완벽한 회사와 팀을 찾을 수 없어도, 지금 현재에 만족하며 살라고 하는 이가 대부분이어도, 이제는 오기로라도 찾아야겠다. 어떻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