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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23. 2023

에피소드와 에픽, 관찰

2023.01.22

이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하루하루를 나의 Sprint 플래닝 안에 맞춰 살고 있다. 


오늘 하루는 Sprint Acorn에, 저 날 하루는 Sprint Cocoa에 (스프린트 이름을 굳이 이렇게 지어야 하나 의문)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스프린트 스케줄에 맞춰 하루에 9시간씩 살다 보니, 오늘이 22일인지 23일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사니, 오늘이 11월의 말일인지, 12월의 초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산다. 


오늘 달력을 확인하니 아뿔싸 벌써 1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오고 있다. 


스프린트 Backlog grooming을 다 끝내고 나니, 이제 돌아오는 주는, 내가 다음 스프린트 때 10일간 휴가를 맘 편히 갈 수 있게, Coverage 플랜을 짜는 날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뭐 대강 답이 나오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이 일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해도 별 문제없는... 그런 Replaceable 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조금 쓸쓸하다. 


그러든 말든, 내 회사 내침도 아닌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다.

구글이 또 12000명을 잘랐다고 한다. 틱톡에서 본 바에 따르면 심지어 다닌 지 1달도 안된 사람들도 그냥 무작위로 잘랐다고 하는데... 과연 무작위였을지, 전략적인 구조조정이었을지 알바 없다.




밀리의 서재에서 한참을 담아놓고는 보지 않았던 철학에 관한 책이 있었다.

그걸 한입에 털어버리는 약봉지를 터는 것처럼, 아침 핸드폰을 켜자마자, 다른 곳도 보지 않고 바로 그 책을 다운로드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충녕 님의 "어떤 생각 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세상만사, 같은 생각과 태도로 가지고 살면, 이 세상이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굳건히 생각하며, 어떻게든 남들과는 다른 행보와 언행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뭔가 제목이 크게 와닿았다.


하이라이트를 전체를 그으라면 그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외우고 싶고, 머리에 박아 넣어보고 싶다.

그중에서도 에픽과 에피소드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에픽, Epic이라는 건, 디벨로퍼와 디자이너도 항상 쓰는 단어이긴 하다. 전혀 생뚱맞은 단어가 아니어서 더 마음이 갔다. 근데 에픽과 에피소드가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에서 살짝 놀라고, 이게 또 독일의 철학자가 만들어낸 개념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철학자 한 스케오르크 가다머는 


대상에 대한 인간해석작업은 짧은 호흡 안에 한번 일어나고 끝나버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 인간해석은 부분과 전체사이를 끊임없이 순환적으로 오가며 무한히 발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최근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의 파트 1편이 끝나고 많은 해석에 대한, 이스터에그(?)에 대한 분석이 유튜브와 틱톡에 올라왔다. 이건 더글로리뿐 아니라 모든 드라마, 시리즈, 영화 등등이 개봉하면 항상 나오는 분석들이라 신기할 바 없는데, 이걸 한스(줄여서 한스라고 부르고 싶다.)가 언급한 것처럼 해석하고 보자면, 참 들어맞는 구석이 많다.


자주 나오는 초록구두는 나중에 파트 1을 전반적으로 다 보고 나니, 그냥 초록구두 지미추라서 나오는 게 아니었고, 각 캐릭터의 옆에서 보일 듯 말 듯 감초 역할을 한 사람들은 파트 2에서 뭔가 일을 낼 사람들처럼 해석된다.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무채색의 옷, 그리고 바둑은 서로 연관성을 띄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내가 항상 쓰는 일지, 내가 하루하루 하는 모든 루틴, 내가 하루하루 먹는 약들과, 하루하루 크게 다르진 않지만 쉬지 않고 미친 듯 돌아가는 두뇌 덕에 달라지는 감정들과 생각들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태도...


이 모든 것이 에피소드라면, 나는 과연 어떤 에픽을 만들어내려고 이런 에피소드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2023년이 시작되고 이제 곧 1달, 내가 쓰는 이 일지들이 하나하나가 다 에피소드라면 이걸 1달 동안 꽉 채워 끝내고 나면 과연 내 1 달자리의 에픽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충녕 님은 우리가 종종 한 에피소드의 좁디좁은 늪에 빠져 한 사태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해석해 내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하셨다. 


이걸 가끔 종종 오는 나의 우울에 가져다 대볼 수도 있을까? 


굉장히 끊임없이 자주 오는 나의 우울충동, 우울해버리고만 싶고, 지금 우울한 이야깃거리만 생각해버리고 싶고, 우울한 채로 나를 버려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 이런 마음에 그냥 빠져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절망에 가까운 나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머리에서는 빨리 이 어두운 암막에서 나오라고, 문이 저기 있다고 그냥 돌리고 발을 내밀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과 정신머리는 그렇게 하도록 쉽게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더욱더 이 에피소드에 푹 절여져서 그냥 나오지 말라고 나를 끌어당긴다. 


여기에서 빠져나와 나의 에픽, 나의 순환을 작동시켜야 더 다양하고 풍부한 각도로 나의 모습을 바라볼 텐데, 내가 나조차에게도 그런 의미해석의 기회를 앗아버리는 그런 상황이 많이 있다. 


충녕 님은 에픽으로 만들고 싶다면, 계속해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연습하고, 조금 더 버티려 노력하다 결국은 돼버리는 깊은 아사아사나 포지션처럼.


나의 그다지도 재밌지도 신나지도, 스릴 넘치지도 않는 이 삶의 하나를 그저 그 사건 하나의 에피소드 한 개로 해석해 버리고 끝날 것이 아니고, 1월 1일의 그 마음과, 2일의 마음, 그리고 현재 22일의 마음속에 관계를 이어, 지속적으로 연결시키고 해석하고 다시 다각화된 의견을 내는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법이다.


나는 우울하고 불안하다. 그리고 나는 노력한다 보다는,

나는 우울하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나는 노력한다.로 살아야 한다. 그런 방법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순환시켜 무한히 교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나 같은 사람도 충녕 님이 언급하신, 상승하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나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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