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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Aug 22. 2020

상하이 10년, 영국 5개월.

 그리고 Fucx, 2020.

상하이를 떠나면, 질질 짜고 뭉클하고 가슴 시린 그런 감정이 생길 줄 알았다.


아주 어이없게도, Practical, 기회주의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채 그렇게 나의 오랜 상하이 생활, 총 10년의 상하이 여정을 끝냈다. 나도 어김없는 그저 혹독하고 바쁜 현대인일뿐이었다. 


마지막, 약 2년 동안의 상하이 여정은 좀 혹독했다.


스타트업 CEO 사디즘적인 행위들을 다 물리치고, 이겨내고, 눈싸움에서 지지 않고, Racism에서도 지지 않았으니, 나는 더더욱 모든 것을 헤쳐나가며, 잘 살아낼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터질게 터져버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과호흡의 반대말이 뭘까? 비 호흡?

우리가 흔히 아는 과호흡의 정반대의 행위를 나는 그 넓디넓은 사무실에서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일할 때 숨을 제대로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목이 조여왔다.

자연스레 숨 쉬는 게 그렇게 힘든지 내 평생 몰랐다. 나 스스로를 목조여 생명에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 이를 수 있다는 걸 매번 느끼고 나서야, 겨우...

 "아. 사무실 가면 너무 숨쉬기 힘들어.."가 입에서 나왔다.


물론 오직 그 직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살아가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 회사가 나의 도화선을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디스트 같은 CEO가 정말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회사를 "박차고, 사표 던지고" 나오고 싶었으나...

아주 조용히 나왔다. 

 (코로나가 미친 듯이 중국을 강타할 때여서, 잘되었군 잘되었어, 하고 나와버렸다. "무서워서 못 있겠다고.")


그저 "나의 미래 커리어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feat. 코로나" 한마디를 남기고.


그리고 나는 지금 영국 시골에 갓 지은 지 1년도 안된 어마 무시한 (한국과 비교해) 집에, 내 방에서 타자를 치고 있다. 현재 시각은 8시 반.


내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만해도 나는 하늘색, 푸르른 나의 미래를 꿈꿨다.

엄청 나근 하고, 포근한 게으른 내 미래.


그리고 인스타에 f, 2020 feat. avenuebeat의 노래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틱톡 영상이 이리저리 돌아다닐 즈음.

아, 망했다는 생각이 금세 들었다.


오자마자 락다운에 들어가. 3달간을 꼼짝없이 집에도 못 나왔다. 

아. 2km 반경에 조깅은 가능해, 좋아하지도 않는 스트릿 조깅을 미친 듯이 해 재꼈다.


그리고 요리, 그리고 커피 그리고 공부.



솔직히 이런 시국이 너무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이기적 이게도, 나는 이 시국이 그렇게 끔찍스럽지 않다.

과부하 걸려 이 생각 저 생각도 못하고 살던 나에게 살짝 브레이크를 걸어줬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내가 탄탄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직장생활=커. 리. 어"를 어떻게 재생시킬까 고민도 많이 했다.


내 인생에 미안하게도, 나는 커리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그냥 돈 주면 돈 주는 대로 거기에 맞춰 그게 나의 "커리어"인 것 마냥, 안심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 허구의 커리어를 나만의 금배지로 만들어서 떳떳하게 하고 다녔다.


냉정한 나의 dear 친구가

"너는 커리어가 없어, 네가 가지고 있는 건 커리어가 아냐." "그런 의미에서 나도 없어 커리어."

했을 때, 약 2시간을 뜨거운 언쟁을 뒤로하고, 나는 결국 인정했다. 


나는 커리어가 없었다. 그냥 돈 버는 직업들만 있었을 뿐.


그리고 나더러 책 및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그 한마디.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너만의 커리어를 만들어봐!"

라고 나에게 간식 던져주듯이 던졌을 때. 

나는 겁나게 화가 났다.


화가 난 이유는, 나는 "좋아하는"게 없고, "커리어"는 더더군다나 생각해본 적 없고, "그런 커리어"는 돈이 안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준 내 친구가 짜증 나고 재수 없었다.


나이 28, 나는 망했다 싶었다.


그래서 여기서 더 뭘 망하나 싶고, 너무너무 쉬고 싶어서, 비행기로 열두 시간이나 떨어진, 내 중학교 버킷리스트 자체였던 "영국"을 택했다.


영국을 오기 전에 한 1달 반 정도를 하루 종일 울었다.

한 40일에서 29일은 울었던 것 같다. 


열심히 머리 처박고 9시간 엉덩이 무겁게 의자에 앉아있는다고 해서, 공부해서 나올게 아니었다, 커리어라는 녀석은.

운다고 나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찾기는.


그러다가 깨달았다. 옘병, 내가 좋아하는 일없으면 그냥 돈 많이 벌고, 비전 좋은 직장을 찾자고, 거기서 쭈욱 버텨서 그걸 커리어로 만들자고.


그래서 이런저런 직장 트렌드를 뒤졌다, 구글, 링크드인, 네이버, 뭐 나오는 건 다 뒤져본 것 같았다.


그중 비전 좋고, 연봉 좋다는 애들로 추렸다.

그랬더니 나온 게, 엔지니어, 애널리스트, 개발자 등등등.


대학 때 필수던 컴퓨터 언어 C 받은 나는. 전혀 시작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나에겐 해당사항 없음이었다.


그러다가 저 직종들과 이상하게 비슷한데, 연봉 겁나 센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UX 디자이너)"를 발견했다.

한국에는 이런 직종이 별로 없었다.

(한국에 있기 싫었던 나에겐 엄청 큰 메리트였다.)

그리고, 생짜 초보도 열심히 하루에 10시간만(....) 투자하면 프로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직종이었다.


그리고, 내이 전 직장들을 생각했다.

이전 직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밥 먹고 얘기하고 노닥거렸던 집단이

바로 저 개발자, UI, UX 디자이너들이었다는 걸.

(유.. 유레카...)



그렇게 나는,

냅다 뛰어들었다. 


그리고 약 5달이 흐른 지금.

나는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러 UX MOCKUP과 WIREFRAMES

그리고 

여러 온라인 코스 자격증도 따냈다. 

그리고 매번,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걸 돈 버는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손톱 뜯으며 불안해하고 있다. 


2020년은 망했다, 우리 모두 그거 하나는 알 것 같다.

그건 틀림없다.


망한 김에, 좀 덜 망하게 준비를 해놓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열렬히 소망하는 2021년을 두 손에 "금가루"를 쥐고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부정적인 생각들을 비우고 책 대신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거북목을 쥐고 공부하고 있다.


허망하게 망하게 내버려둔 나의 2020년을 조금은 덜 슬프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도저히 이곳에서 이야기할 사람도, 연락할 인간도 없어.

이렇게 오랜만에 나의 브런치를 찾아봤다.


두서없는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발, 10원이라도 좋으니 이걸로 돈 벌게 해주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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