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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Sep 16. 2020

여자는 코스모폴리탄, 남자는 에스콰이어

저는... 에스콰이어 주세요.

7 살 이래로, 처음 허리까지 길어본 (자의가 나이었다...)

머리를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미용실로 달려가 싹둑 잘라버리고,


소심한 반항심에 머리 가닥가닥 탈색을 해버렸다.

머리를 아예 검은색으로 덮어버려 

"한번 덮은 머리는 색깔 빼기 너무 힘들어요..."

라고 하셨지만, 


끝끝내 빼내 주시라고(?) 해서 빼버렸다.

가닥가닥. 


코로나 덕에 항상 나오던 음료 서비스도 없어져, 

할 수 있는 건 잡지를 보는 것뿐,


그때 스태프 분 중 한 분이 

"잡지 가져다 드릴게요. 잠시만요." 하셨다.


그리고 나는 

"어.. 저기.." 내가 원하는 잡지를 말할 새도 없이

코즈모폴리턴 8월호를 받아보았다.


나는 소심하게 그분을 다시 불러,

"저.. 저는 에스콰이어 주세요." 


그제야 내가 원하는 잡지를 받아보곤, 

"잡지 zen"에 빠져들었다.

나의 사랑스러운, 재규어, 나의 사랑스러운 남성 슈트.. 가방... 카디건,


와 9월이라고 이렇게 잡지가 두둑해서야..

땡전 한 푼도 없는데 어쩌라는 거죠.. 흐흑.




나는 그 집 미용실을 다닌 지 거의 3년이 넘어가지만,

항상 스태프분은 마치 default값이

여성은 코스모, 남성은 에스콰이어(가끔 GQ)인 듯이 

어김없이 코즈모폴리턴 잡지를 주신다.


물론 대중적인 취향을 고려해 그런 건 당연지사로 알일 이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취향을 고착화시켰을까?


이런 예를 들여다보면, 셀 수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여자는 바비, 남자는 자동차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항구, 남자는 배

여자는 긴 머리, 남자는 커트머리

여자는... 남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국 가수중 하나인 

Ed Sheeran이 여자 친구와 아이를 가졌다.

그리곤 인스타그램에 아이가 앞으로 입을 꼬까옷과 신발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걸 본 내 남자 친구 엄마는 

"왜 여자애라고 들었는데 옷이 파란색이지?"

하셨다.


정확히는 파란색도 아니고 초록도 아니고 노랑도 아닌

그러데이션 색이었다.


그리곤 나와 남자 친구 누나는 동시에

"왜 안돼?"라고 대꾸했고,

"oops, I am old fashion."이라고 답하셨다.


그렇다.

왜 여자는 default 값이 에스콰이어이면 안되나? 왜 블루이면 안될까?



@Unsplash

매스미디어와, 교육의 힘이란 무섭다.


나조차도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 유치원 들어가자마자 핑크공주가 되어버릴 뻔했으나,

박 여사의 선견지명 (내가 지라..ㄹ 할걸 안 것일까?)으로 나는 

약간 Gothic 한 여자아이가 되어 퍼플과 와인색을 주로 입었고,

항상 바비와 인형보다, 자동차 모형을 내 주변에 끼고 살았다.


하지만, 나같이 이런 잡스런 취향을 가지게 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될까?


이런 주입식 Default 값은 무섭다.

고착화시키면 더 무서워진다.


조금이라도 그 Default 값에 벗어나면,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심하면 경멸까지 한다.


"왜 그래?"

"이상해."

"뭐가 문제야?" 

"... 어... 좀..." 등등 많은 반응을 보며 우리는 또 그 Default 값에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 사회에서 먹고살고 살아가는 건 나니까.


정말 친밀하고, 프라이빗 관계에서 조차 이런 Default 값은 굉장히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Ex들... 그들은 내가 이런 취향을 갖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심지어 그걸 바꾸려고, 나에게 요즘 뜨는 핫 키워드.."가스 라이팅" 비슷한 것도 받아봤던것 같다. 


"여자는 드레스지"

"여자는 좀 여성 여성해 야하지 않아?"

"여잔데 왜 그렇게 입어?"

"여잔데 왜 그런 걸 좋아해?"


나중에 이런 질문들이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너.. 혹시 문제 있어?" 

로 결론지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양성애자라고 오해하는 아이도 있었다.

뭔.. 옘..ㅂ


어이가 없었으나, 내 남자 친구이고, 나와 가족 다음으로 가까운 

"살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에 따르려 노력했다.


머리를 길었고, 

최대한 치마를 입었고,

셀피를 찍을 때도 이쁜 여성 여성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짓거리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려 3년)

알아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다행이다.

그만두어서, 그만둘 용기가 있었고, 결단력이 있었어서,

안 그랬으면


나는 평생토록 

코즈모폴리턴에서 나오는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섹스 스킬과, 스킨십으로 남자를 뻑가게 하는

스킬을 연마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재규어와, 벤츠 등 슈퍼카들을 뒤적거리지도 못하고

남성 어패럴 라인 중 얼마나 나에게 잘 어울리는 재킷과 티셔츠가 있을지도 모른 채

그렇게 꾹꾹 나를 누르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그 전 남자 친구의...?) "안"사람으로.


앞으론 잡지가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내가 직접 에스콰이어를 뽑아 들어야겠다.

스태프 언니의 수고도 덜어줄 겸.


오늘도 나는 남성 아이브로우 제품을 내 장바구니에 넣었다.

색깔이 너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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