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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Sep 23. 2020

뻔히 보이는 길, 당신이 막을 수는

없다.

이제 곧 출국을 해야 한다는 걸 안 

내 친동생은,

나를 가기 전에 보고 가겠다며,


혼자 자취하고 있는 강남에서부터

나를 보러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내가 먹고 싶었던 

깐풍기에 중국음식을 대차게 먹어놓고,

가족 대화의 전형적 Cliche.. (왜 그렇게 모이면 요런 얘기만 하게 되지..)


미래에 뭘 하고 먹고살까.

지금 현 회사가 어쩌고 저쩌고 (뒷담) 등등을 

늘어놓다...


결국엔, 뻔히 고생길이 보이는 길을 가려는 동생에게 

화가 나(?)

약 1시간 동안 엄청난 잔소리와 그에 따른 언쟁을 하게 되었다.

그 1시간 언쟁의 결말은...

"뻔히 보이는 길을 가려고 하는 당신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 


동생은 잘 나가는 미국의 VC 회사에서 

뼈 빠지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공짜로) 바쳐가며

인턴으로 거의 1년을 일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소한 보답이었는지

정직원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여느 회사가 그렇듯이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계속 뼈 빠지게 일한 동생을 

이리저리 간 보는 듯했다.

눈치게임, 심리전 싸움, 치사한 사람 몰기 등등등.


이런 전초전에 이미 진이 빠진 동생은

"내가 좋아했던, 내가 그리도 가고 싶었던 회사가.. 이런 회사였다니."

라며 콩깍지가 벗겨졌고,


정직원 오퍼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미 그 회사에 마음을 접고 있던 와중.

이일에 적격은 얘밖에 없다는 게 확정이 났는지

파트너가 직접 오퍼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정직원 생활은 안 봐도 시원찮은

그런 생활이 지속되었고,

야근은 야근대로, 해외서 혼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져,

눈치는 눈치대로 보며 회사생활을 원격으로 하는 내 동생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체 반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정신이 피폐해져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테는 말이야."의 비슷한 버전을 

내놓으며, 나는 그래도 회사에 정직원으로 들어갔으면 1년 이상 2년은 버텨야

그 회사의 진국을 맛볼 대로 보고, 진저리 날만큼 회사가 싫어져야 

나오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동생이 하고 싶다고 했던 공부를 "미리" 반대했다.

아니, 반대했다기보다는, 조금 더 긴장감을 가지고 생활에 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심어줬다가 맞는 것 같다.


말하면서도,

"내가 남 말할 처지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뻔히 보이는 길을 가는데, 그 길을 그냥 가라고 아무 조언이나 말도 없이

보내는 건 "가족"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할 때 보이는 눈빛,

울그락 불그락 하는 얼굴,

손짓,

내보이는 땀방울,


그런 모습을 보니, 

"아 얘도 그런 걸 알고 있구나, 그런데도 어떻게든..."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주마등처럼  

나와 동생의 선택 차이,

학교생활 차이,

생활습관 차이, 친구관계 차이 등이 뇌 속에서 스쳐 지나가,


"아... 얘는 나랑 다르지."

를 문득 새삼스레 다시 깨달으며,

결국 나는 다다다다 쏟아부었던 내입을 다물고, 한발 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네가 가려는 길을 엄마도 나도 누구도, 네가 가겠다면 막을 수 없어."

"그렇지만,.... 일 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


라고 해주었다.



동생은 온 김에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옷을 가져가겠다고 했고,

나는 동생의 겨울옷을 되는대로 이리저리 싸주었다.


그리고 15kg 그램이나 나가는 가방을 전철까지 들고 가게 할 수 없어,

엄마는 택시를 불렀고, 나는 옆에서 멀뚱멀뚱,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얘가 마스크 뒤로 감추고 있는 표정이 어떤 건지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금세 택시를 태워 보냈다. 


엄마는 나에게, 

"가족끼리 서로 얼마 보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언성을 높여 말을 해야 됐니.."

"남도 아니고, 가족끼리인데..."

라며 나를 더욱 찔리게 했다.


그리고 나는 미안했다.

내가 했던 대화법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었을 텐데.


집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택시 안에서 화상 미팅도 해야 하는 애한테..

내가 너무 했다 라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동생에게 이것저것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내 맘 속에 새겼다.

그 길이 뻔히 보일지라도, 내가 가본 길이라도, 당사자가 가고자 하는 것을 내가 무슨 근거로 막을까.

내가 막을 수는 없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가 깨닫지 않는 한.


그리고 내가 갔을 때는 가시 밭길이라도,
그가 갔을 때는 장미꽃밭일 수도 있지 않을까?


동생아,

네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네가 발을 내딛었을 땐,

장미꽃밭으로 환하게 펼쳐져 있길 바란다.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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