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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r 21. 2022

나의 멘털 일지 1

3월 넷째 주, 나에게 무슨 일이.

03.14

오늘 내 인생 난생처음 카운슬링을 돈 주고 했다.


이미 한국에서 의사 선생님을 보며 약을 처방받고 약 20분간 상담을 받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최근 내 파트너와의 말다툼에서 내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아주 심상치 않게 들어, 안 되겠다 싶어 끊었다. 1회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한다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국어로 할 때는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필터링을 거쳐 나올 때가 많아, 내가 말을 하고도 뭘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많고, 다 얘기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중요한 걸 빼먹는 그런 사례가 많았는데.....


신기하게 영어로 하니, 영어가 아직 딸려서 그러는지 필터링 따윈 없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목적은 Feel better about myself, 왜 그렇게 생각하고 너의 Feel better의 기준은 뭐니? 를 묻는데,

참 내가 생각했던 Feel better이라는 게 굉장히 엉성하고 애매모호했구나를 깨달았다.


문장으로 풀어내니

나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고, 성격이 좋다는 말을 듣고 싶고, 굉장히 친근하고 사귀기 좋은 친구로 각인되고 싶으며, 내 주변인들이 언제나 나와 같이 있는 게 편안하게 느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거 말고, 네가 생각하는 건 뭐냐고 물으셨다.

잠깐 10초간의 긴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10의 상태에서 벗어나 0으로 가고 싶다 얘기했다.


이미 내 마음속에 알려진 어릴 적 트라우마와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전문가에 의해서 드러났고, 1시간뿐이었으나, 굉장히 신선했다.

더 알고 싶어 또 상담을 신청했다.


근데 비싸다...

2주에 한번 해야 될 것 같다.



03.15

오늘 월급날인데 또 이것들이 늦는다.

하.


이유인즉슨 내가 영국에 있고, 해외계좌로 돈을 보내야 되기 때문에 늦는다는 것.

안 그러기로 ceo랑도 약속 도장 찍고 항상 ontime 에 보내기로 했는데.....


또! 늦는다.


아 빡이친다.


내가 다른 것 보고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경험치 그리고 돈 받으려 여기에 다니는 건데, 그중에 반이 없어진다. 


배불렀나 싶다가도, 내가 일한 만큼의 돈은 바로바로 제때 받아야 할 맛이 나는데. 이건 뭐....

기본적인 생존권도 컨펌받지 못하는, 대우받지 못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뭣 같다.


프리랜서들은 도대체 이런 스트레스를 매달 혹은 매주 어떻게 받는 걸까.

정말 징글징글하다.


이것도 이렇게 적어놓고 선생님께 얘기해야지. 

또 이런 더러운 마음으로 나는 몇 달 뒤, 회사에 퇴사한다고 하고 더 좋은 직장 , 조건으로 나간다! 퉤 퉤 퉤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하면서도 기분이 더러운 건 왜일까?


그냥 Move on 해야 되는데 그놈에 넘어가는 게 쉽지가 않다.

뭘 어떻게 해야 Move on이라는 게 쉽게 되는 걸까.



03.16

아침에는 분명 개운하게 파트너의 모닝 알람으로 일어났던 것 같은데,

그 기운은 체 20분도 안돼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러운 기분만 남았다.


아직도 돈이 안 들어왔다.


아니 다 죽어가는 스타트업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자기 내들 개발자 팀 30명에서 40명으로 인수 넘기며 회사 키운다고 자랑하더니.. 월급도 제때제때 안주는 꼴이라니.....


더 짜증 나는 건, 그냥 이걸 애처롭게 가소롭게 한번 째려주고(?) 넘어갈 수 없는 나의 성격이다.

뭐한다고 이걸 계속 곱씹고 하루 종일 스크린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뚫어져라 본다고 메일이 갑자기 온다던지 슬랙이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당장 입에 들어갈 빵이 없어, 쫄쫄 굶으면서 눈물을 훔치는 그런 상황도 아니겠만,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도 된다고 도대체 누가 그러는 건지......


21세기에 돈하나 제때 제시간에 못 보내 사람을 이렇게 빈정 상하게 하며,

오늘 XX 그냥 일하지 말아 버려? OFFLINE 때려버려? 를 시전 하게 하다니..

물론 간이 작아 그러진 못한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할 팀원은 어쩔쏘냐.


하.

인생 참 살기 귀찮은데. 

이미 내가 저질러놓은 물과, 행해놓은 결속이 있어 차마 입에서는 끄집어내지 못하겠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이건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03.18


첫 드레스 피팅을 하러 갔다. 

프랑스에서 디자이너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핸드메이드로 만든 거라면서, 근 3달은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휴일 직전에 다 쉬기 전에 주문을 넣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었으면, 발가벗고 식 올릴뻔했다.


드디어 첫 피팅,

런던까지 기차 타고 가는데 그 가는 와중이 왜 이렇게 심난하던지.


약혼반지 제대로 끼고 내 사이즈에 꼭 맞는 드레스를 딱 입는데, 이렇게 편하고 이쁠 수가 없다.


이래서 다들 웨딩드레스 입고 싶다고 울부짖나 보다.


무려 800만 원 넘게 수선비용까지 포함해서 산 드레스인데, 안 이쁘면 이상하지.

수선비만 그날 96만 원이 나왔다.. 


드레스를 한국에선 렌트하는 게 당연해, 나도 처음엔 영국도 그렇겠지 했는데 웬걸 다들 산다고 하더라.

사서 그걸 두고두고 집에 두었다. 아이 드레스를 만들어주거나, 결혼식에 주거나, 업사이클한다던데.


아니 왜 굳이.. 구질구질 ;; 하게 딸아이한테 자기 입던걸.....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나 보다.


나는 내가 업사이클해서 입으련다.


여쨌든 더러웠던 기분, 치사했던 기분이 정말, 순식간에 눈 녹듯이 드레스와 함께 사라졌다.

물론 내 지갑의 돈도 어디 갔나 사라졌지만......


이걸 보고 펑펑 울 린다와 엄마가 기대된다.

너무 사이코스러운 발언인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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