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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r 28. 2022

피곤한 멘털 일지 2

세상이 나한테 빚졌다.

03.21


매주 월요일에서 2주 간격의 월요일로 카운슬링의 스케줄을 바꿨다.


돈이 너무 나간다.

비자 때문이다. 하 이놈의 해외생활의 평안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구나.


비자가 결혼식보다 훨씬 많이 나간다는 게 정상인가 싶다가도, 어차피 내 인생에 2번 치러야 할 것 빨리 해치운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러다 보니 저번 주는 정말 엉망이었다.

돈은 돈대로 나가는데, 이놈의 망할 회사는 제때 페이를 주지 않고, 나는 화가 났다.


오늘 열변을 토해 선생님께 말했더니 , 선생님께서 아주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어정쩡한 질문을 하셨다

Are you angry?

나는 하루 종일 며칠간을 앵그리버드처럼 화가 났지만, 화가 난다는 말을 입 밖으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계속해서 회사가 x 같다, 뭐 이런... 정말 짜증 나는 회사다 등등을 짓어댔지만, 정작 이것 때문에 화가 나고 슬프고 나 자신이 싫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대신해서 그걸 일깨워주니. 참 다행이다 싶다가도, 금세 호오 이선생님 꽤나 괜찮은걸 싶었다.

다른 선생님 찾기도 귀찮았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본래 직업이 그런 건가?

지속적으로 나의 감정이 Valid 하다는 언급을 해주셨고, 그 느낌은 당장 이 회사가 나를 잘못 대우한다는 것에 화가 난 다기 보다, 이것과 그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상하이에서 있었던 일도 주절주절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전에 훨씬 전에 있었던, 내 아버지라는 작자의 얘기도.....


그리고 이야기를 끝내면서, 

계속해서 아빠 핑계 대는 게 너무 피곤하고 지친다,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떻게 해요?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지속적으로 나 자신에게 무 손상 태인지 묻고 일깨워야 한다고 하셨다.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유의식의 상태로 끌어내지 못한 그 상태를 바꿔, 계속해서 본인을 유레카의 순간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려면 꽤나 돈과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이 들다, 아.. 이선생.. 나한테 약 파나? 

하다가 다시,

에이, 돈 주고 하는 카운슬링인데 당연하지. 


하고 넘겼다.



03.22


아니 이놈의 기분은 언제 한번 화창하게 쨍한 적이 없다. 왜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약을 먹었는데, 요새 들어 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제는 갑자기 길거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Greggs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러 갔는데, 해가 비춰 그런지 사람이 꽤나 북적였다.

그리고 들어가 줄을 서는데, 그 뒤로 아이 셋을 달고 오신 아주머니가 두 아이는 옆에, 그리고 아기는 유모차에 태워 들어오셨다. 


갑자기 기분이 나빴다. 그냥.

그리고 목이 그들이 나를 째려보고, 모든 이가 모든 사물이 눈이 달려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손발에서 식은땀이 낫다. 


그리고 갑자기 유모차의 아기가 울어대는데, 너무 목소리가 높고, 커서 정말 정신이 나갈뻔했다.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일부러는 아닐 테지만, 한 아이의 신발이 나의 신발을 찼다 (차였다.) 

그리고 발동, 도저히 너무 힘들어 걸을 수가 없어, 길거리에 주저앉아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고, 빨리 집에 가자 했다. 너무 힘들었다. 그냥 


목 조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약도 없었다. 젠장 맞을.


이전에 꿍쳐두었던 약을 부랴부랴 찾아내, 하나 삼켰다.

그리고 멈췄다.


이놈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언제가 끝일 지 모르는 채 계속 경험해야 한다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Be kind to yourself라고 하셨는데, 이 상황에 그게 되나 싶다.

왜 내 몸뚱이는 이 모양인 건지. 증오스러운데 be kind라니. 




03.24

내생에 이렇게 짜릿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몇 번 없었다. 


그 몇 번 없는 순간에 영광스럽게 들어차지 한 오늘.


오늘 드디어 2년 반짜리 비자를 신청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비자가 발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기뻐서, 소리를 못 지르고 내적 고함에 주먹을 방방 휘둘렀다.

이메일에 적혀있는 내가 BRP를 받게 됨과 동시에 얻게 될 권리들을 보면서, 와 드디어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이놈의 정신머리는 어디 안 간다고,

그와 함께 불안함이 몰려왔다.


어? 뭐지, 이렇게 바로 운 좋게 될게 아닌데?

언제나 등가교환의 법칙은 틀리지 않는다 내 인생에선,


좋은 운이 생기면, 나쁜 액땜도 생기는 법인데, 그게 뭘까 불안하면서도 안 왔으면 좋겠으면서도.. 결국에는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했다.


날씨는 또 얼마나 화창하고 좋던지.

영국에선 태양이 자기 제 일을 하는 경우가 정말 드문데, 이렇게 1주일 내내 화창하고 뽀송하다는 건, 앞으로 2주 동안은 꽃샘추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는 의미다.


내 운도 영국 날씨처럼 힘들까? 


들뜬내마음에 찬물을 양동이로 끼얹어 본다.



03.25

주절주절 파트너와 얘기하다, 

이번에 비자 때문에 내 인생의 좋은 운이란 운은 다 가져다 썼으면 어쩌지?


라고 했더니, Dan 왈;

그렇게 따지면, 너의 인생은 대부분 마이너 스였어서, 아무리 많은 운이 너에게 찾아와도 모자란다며, 


세상이 너에게 빚졌어.

라고 말했다.


마이너스통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정도 운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운이 몰아 들어올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해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 증명서에 사인은 잘한 것 같다. 



03.26


세상 마상, 결혼, 비자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금전 스트레스와 그냥 이런저런 우울함으로 이해서 요새 내정 신이 없다. 내 정신이랄 게 원래 있었나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싶다.


열심히 쓰고, 신청하고 했더니 

천만 원대의 지출을 쓰고, 그걸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턱.


이렇게 비자를 받고 행복한 것도 잠시,

이렇게 어른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30년 인생 정말 그냥 나그네처럼 살았다.

나그네처럼, 여기저기서 그냥 떠돌아다니면서 투어리스트처럼 살았다.


영국에서 2년을 넘게 살았으나, 지금껏, 내가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 것이라 마음속 깊이 느끼고 음미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계속 여권도, 네 출입국 사무소 기록도 여행객으로 마무리되니, 이렇게 그냥 내 인생도 여행객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상하이에서 살 때만 해도 이렇게 아무런 어딘가에 묶여있을 책임 없이 살아가는 것도 좋다 했는데, 이 자식을 만나고 이렇게 될 줄이야.


앞으로 함께, 은퇴계획, 더 나아가 잠시 잠깐 해외에 나가 노는 여행도 scratch부터 기획하고 얘기하고 실뜨기하듯이 서로 짜 맞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뭔가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 기대감에 살짝 부풀었다.


댄서 모니카가 얘기했던 자아 없고, 자가 없고, 자차 없는 그런 사람과 모든 걸 함께 같이 이루어나가는 게 이상이라는 그 상황이, 나한테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내 파트너는 자아가 너무 있어서 자주 부딪치지만, 없는 거보다야 낫다.

자아, 자차 있으니, 자가를 향해 달려가야겠다.


비자 다 끝나고, 굉장히 안티 클라이맥스를 느끼고 있는 찰나, 자가를 향한 나의 부푼 꿈과, 포폴 준비, 더 나아가 우리 결혼비용 지출을 메울 생각 하니, 가슴이 쿵덕쿵덕

우울할 겨를이 없다.



03.27


오늘은 Mothers' day.


엄마의 날이라는데, (아빠의 날도 있다.) 결혼하고 첫 엄마의 날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꽃도 사고, 린이 좋아하는 초콜릿도 사고.. 


근데 나는 왜 매년 엄마의 날마다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찔릴까.


한국에서 골골골 하시는 박 여사의 모습이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이런 걸 엄마한테 나도 해야 되는 건데.


제일 피해야 하는 파트너 형태 중 하나가, 결혼하고 갑자기 효녀 효자 되는 스타일이라던데, 구제불능이다. 


나중에 크게 한방, 크게 한턱 쏴야지 라는 생각으로 상하이에서도 (2시간밖에 안 되는 그 거리에서도) 이런 걸 꾸준히 챙겨 본 적이 없다.


이제 와서 영국에 있다며 9시간 시차가 불러일으키는 효녀심청의 마음으로, 엄마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곶감도 보내보고, 꽃다발도 보내보지만, 맘 한편이 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곧 올 내 결혼식에 엄마가 참석해 나도 엄마도 서로의 가슴 한구석에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그 구멍을 이쁜 추억으로 채웠으면 좋겠다.


그전에 엄마 다리가 다 나았어야 할 텐데.

빠뜩빠득 쏘다니는 동생도 그렇고 4월은 살짝 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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