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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y 15. 2022

억울한 나의 평화, 를 향해 가는 길

왜 지금인지 묻고 싶으나, 지금이 어디냐.

일전에도 적어 내린 적이 있다만, 갑자기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한 느낌이다.

내가 정말 죽을 뻔했을 땐, 정말 필요했을 땐, 그거 아니다, 아니다 하더니.

이제야 오는 건 좋은데, 참. 좀 억울한 느낌이 있다.


이제서라도, 그래도 뭔가 내가 x신이 아니었구나를 대중매체가, 대중이 알아주는 것 같아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면서도, 뭔가 찝찝하다. 


내가 그토록 박해(?) 받던 어린 시절을 몽땅;

"거봐 원래 네가 맞았어.. "로 기억될까 봐, 짜증 난다.




최근 결혼하기 전, 나중 나중에 웨딩 사진이 나오면 어린 시절이랑 같이 한 묶음으로 내 평생 제대로 된 앨범 하나 만들어 후대가 생기면, 후대에게 이랬다! 하고 자랑하려고 엄마에게 이리저리 먼지더미 박스에 묵혀두었던 나의, 그리고 엄마의 싱싱한(?) 사진들을 달라고 했다. 


죄다 애기 때는 뚱.

유아기를 벗어났을 즈음에는 또 찡그리는 세상 다 산 표정. 

어린 시절 유치원 갈 때 즈음 그래도 꽤나 반 친구들이랑 놀았었다. 그나마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내가 정말 남들과는 너무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걸 알고, 그리고 우리 집만큼이나 집안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집구석은 없다는 걸 알면서 그나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주변 친구들도 다 없어졌지만......


얼마 몇 장 없는 그 친구들과 의 사진에서도 나는 너무 피곤에 쩐 표정이다. 

그때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그때 그 당시에 들었던 느낌과 생각으로 돌아간 것 같아 굉장히 피곤해졌다. 진짜 너무 피곤했다.


애들이랑 와와 거리면서 노는 것도 피곤하고, 뭐가 저렇게 다 좋고, 행복하고, 꺄악인건지 알 수가 없는데, 거기에 장단 맞춰줘야 하는 것 같고, 안 그러면 내가 정말 정말 덜떨어지거나, 외계인이 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십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세 살 버릇 어디 안 간다고, 계에 소옥 힘들다.

인간이 너무 싫었다. 특히 상하이에서 나오기 바로 1년 전 그 period때는 아주 그냥, 17층에서 살았는데, 아침마다 일어나서, 저녁에 집에 오면, 누구와 같이 살고 있었음에도, 저 큰 창문으로 번지 점프하듯이 휙 달려서 떨어지고 싶었다.


다시 내일 또 눈 뜨고 일어나서, 그 힘든 발걸음을 상하이인들과 같이 옮기고, 다시 저 미친 미친놈 CEO와 얼굴을 맞대고 거기에 맞장구쳐야지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아는 인간들과 상종하면서, 애써 애써 내 생활비를 버는 게 정말이지, 차라리 지금 확 여기서 뛰어내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걸 옆에서 본 내 파트너는......


존경한다. 이 자식. 



청소년기로 들어서서는, 이제 좀 머리에 피좀 말랐다고, 이리저리 내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나를 나름 생각해냈다.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나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 정말 멋대가리도, 애정 대가리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아비를 만나, 내가 이런 것이다. 그렇게 쉽게 생각해내려 했건만, 아쉽게도 대중매체와 나의 주변인은 내가 그렇게라도 COPING 하는걸 눈에 두고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을 이겨내고 서울대를 들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청소년의 길을 벗어나, 고등 3학년 전교 꼴찌에서 연대를 가고......
왜 다들 그렇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그다음이 다 "SKY대를 들어갔다." 이거였는지, 그때 트렌 드였나 보다. 


그리고 최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십 대와 어린 청소년 그리고 20대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 들은 아프니까 청춘이어야 하고, 젊고 에너지가 노인들보다 많으니, 에너제틱에 열정적이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나는.
 왠간히 어릴 적부터 우울에 젖은 나는, 기타 친구 학부모, 주변 길거리 어른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친척,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서 까지, 단 한 번도 

어디 아파? 왜 그래? 화났어? 뭔가 일 있어? 왜 우울해 보이지?

를 하루도 빼놓고 듣지 않은 적이 없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으니, 나중에는 내 얼굴과 몸을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쁘지 않아서, 내가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서, 내 눈에 살이 많아서, 얼굴에 살이 많아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보여서.....


아주 온갖 것이 다붙었는데, 그때 입꼬리가 쳐져 있던걸 어떻게든 올리려고, 항상 펜으로 입가를 꾹꾹 눌렀던 것이 생각난다.


절대 따라 하면 안 된다. 오히려 얼굴에 불균형이 일어났다. 웃으면 무섭다....



이렇게 정말 죽을 둥 살똥을 다 뱉어내며 어떻게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질질 질 끌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시선이 바뀌는 걸 느꼈다.


우울은 전염병이 아니고, 질병이 아니고, 그냥 마음이 아픈 거다부터 시작해서, 왜 청소년, 젊으니 들이 아파야 하냐며,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웬 말이냐에, 왜 꼭 다 행복해야 하냐 등등 누가 내 머리에 있던 말들을 고대로 Ctrl C+Ctrl V 해 TV에 신문에 붙여 놓은 것처럼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다.


좀 짜증 났다.


아니 정말 필요할 땐 없더니, 왜 이제 와서, 뭐 때문에? 원망했다.

그러 든 말든. 이러다가 다시 가겠지 했건만, 아직까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신기하다.


카운슬러에게 최근 언급했던 말 중에, 카운슬러가 중간에 웃었던 말이 있다

"인간을 믿느니, 길거리에 지나가는 들개가 나를 안 문다에 내 목숨을 걸겠다."라고 하며, 나도 인간이면서 인간을 혐오하는 말을 꺼냈다.


그렇게 인간을 믿을 수 없고, 언젠가는 너무너무 지겹다. 내 파트너고, 부모고, 동생이고, 회사 인간이고 다 지겨운데 그냥 이거 다 멈추고, 나도 에반게리온처럼 세상 멸종 세계에 있거나, 아니면 그냥 나조차도 멸종했으면 좋겠다고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근데 이제는 이런 말도, TV에 나오고,

이쁜 동생, 오빠들이 말해서 그런가, 다들 그럼 그럼 그렇지! 나도 나도! 의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인간을 싫어해도 지겨워해도 된다고.


내가 할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더니, 저분들이 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위안인 건, 내가 시기에 맞춰서 생각해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미리 깨닫고, 나중에 누군가 인정해줄 때까지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나의 평화", 를 향해가고 있다는 것.


돈이 많아 평화이던, 우울하지 않고 행복해져서 평화이던, 너무 바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생기는 평화이던, 남에게서 기대어 오는 평화이든 간에, 그래도 평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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