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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파도에 올라타 봐야 하지 않겠소?

[영화리뷰] 영화 '관상 '

by 싱클레어

인간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늘 궁금해왔다. 점성술, 점, 예언, 사주팔자, 궁합, 주술, 관상, 주역 등 이 모든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 인간의 역사와 함께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20세기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학문의 발전을 통해 지구를 벗어나 화성을 탐사하는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오감과 경험, 통계적으로 만들어 온 전통적 방법에 의존한다. 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도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과 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관상에 대해 알아보면, 관상의 정의는 “상을 보아 운명 재수를 판단하여 미래에 닥쳐올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는 점법”이다. 즉, 사람의 얼굴에 자신의 운명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얼굴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다면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은 가까이하고, 불이익을 주는 사람은 멀리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길 것이다. 혹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기에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조선의 왕정에서 ‘역모’는 왕위 찬탈을 의미하며, 권력을 지키려는 세력과 빼앗으려는 세력이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사건이다. 두 세력 간의 명운을 건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기 위해 비정함, 배신, 살인, 독살, 납치, 권모술수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한다.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비운의 왕이라고 불리는 단종. 그는 믿었던 숙부에게 배신을 당해 폐위당하고, 결국 16살의 나이로 교살당한다.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보다 힘이 없어서 당했던 것일까? 단종 곁에는 조선 초기 6진 개척이라는 공적을 쌓은 김종서라는 문무 겸비의 장수가 있었음에도 단종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서 영화 ‘관상’의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에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킨다는 것을 단종이 미리 알았다면 역모를 막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사람의 상을 가지고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는 ‘관상가’를 끌어들인다. 즉, 미래를 알 수 있는 패가 단종에게 주어진다.

영화 '관상' 줄거리: 관상가 김내경은 사람의 관상을 보고,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탐관오리의 비리를 밝히고, 관상을 바꿔서 그 사람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천재적인 관상가이다. 문종과 재상 김종서는 김내경을 통해 수양대군의 관상을 보게 만들어 역모를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수양대군은 김내경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문종이 죽고 나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킬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머뭇거리던 김종서와 단종은 김내경의 기지로 인해 수양대군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을 알고 있는 김내경은 자신의 처남 팽헌에게 말한다. 하지만 김내경의 아들 김진형은 올곧은 성격이라 김종서의 비리에 대해 상소를 하게 되고, 이를 안 한명회는 김종서 사람들을 위장해 김진형의 눈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조카가 김종서로 인해 다쳤다는 것을 안 팽헌은 수양대군 제거 계획을 수양대군에게 말하게 되고,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찾아가 그를 제거한다. 왕이 된 수양대군은 김내경의 아들을 관상 값이라며 화살로 죽인다. 이 모든 것을 목도한 김내경은 오열하며 시골로 내려가 칩거한다.


이 영화는 관상가 김내경과 팽헌, 자신의 아들 김진형에 대한 이야기와 수양대군의 등장 이후 시종일관 권력의 최고 정점인 왕권을 두고, 지키려고 하는 세력과 찬탈하려는 세력이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얽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면 바꿀 수 있는가?


영화 '관상'에서 말하는 답은 개인의 운명을 알고 있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종이 미래를 알고 있더라도 결국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을 것이란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자면, 첫 번째 문종이 죽기 전에 이미 수양대군은 사병과 지지세력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었고, 문종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단하지 못했다. 충신인 김종서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권 다툼의 당사자인 왕족이 주축이 되어서 나서지 않는 이상 왕의 친형제에게 일개 신하 중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역모가 일어난 후의 사후 대처일 것이다. 결국 어린 왕과 김종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수양대군을 감시하면서 역모의 낌새가 보이면 처단한다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다. 이로 인해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김종서가 제거되고 나면 역모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종이 정말로 단종의 왕권이 단단해지기를 바랐다면 자신의 양심적 가책을 잠시 잊고 골육상잔을 하더라도 수양대군의 힘을 없애야 했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문종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하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이는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두 번째, 수양대군에게 권력이 모이는 큰 흐름 속에서 개인의 운명을 알게 되더라도 그 큰 흐름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머뭇거리는 단종과 김종서에게 수양대군을 제거하도록 근거를 제공했던 김내경의 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내경의 처남 팽헌에 의해서 수양대군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김내경이 팽헌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죽일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김내경을 데려온다는 것은 그와 그의 가족들을 다 데려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내경이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자신과 가족에게 관대한 사람이므로, 팽헌과 김진형이 없는 김내경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팽헌과 진형의 관상을 알고 있더라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을 끝까지 고수하지 못해 결국 둘다 자신의 관상대로 내버려 두게 만들었던 사람이 김내경이기 때문이다.


김내경은 일찍이 팽헌은 다혈질이고 성격이 불 같아서 스스로를 망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김내경은 팽헌에게 가장 중요한 기밀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김내경은 김종서에게 인재 등용 시에 관상을 보고 각자 성격에 맞게 부서를 정해주는 선택을 하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관상을 알고 있음에도 팽헌의 운명을 막을 수 있는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아들 김진형에게 관직에 못 나가도록 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아들과 처남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막지 못하는 김내경은 수양대군의 역모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지만, 큰 흐름을 바꾸는 힘이 한 참이나 부족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은 결정되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면 바꿀 수 있는가?


영화 '관상' 사색: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겪은 슬픔, 기쁨, 분노, 억울함, 외로움 등 수많은 감정들과 자라면서 들었던 가족의 이야기, 문화가 고스란히 자신의 선택에 표현되어 자신의 삶과 얼굴을 만들고, 삶의 흐름 혹은 경향성을 만들어 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삶의 흐름이라 통계적으로 혹은 경험으로 그 사람의 앞으로의 선택에 대해 예측할 수 있기에 한 사람의 미래를 본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점, 관상, 사주팔자 등으로 부르는 것일 게다.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분명한 흐름이고, 그 흐름이 크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영화 '관상'이 보여주듯, 자신의 삶의 방향을 알고 보다 더 좋은 미래로 이끌도록 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왔던 선택의 흐름들을 바꾸는 것이기에 뼈를 깎는 노력이 있지 않는 이상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자신의 삶의 흐름을 해체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분석하여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숙고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던 결정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제거하고, 제거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부모, 친지, 사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자신에 대한 부정적 판단들 등을 백지로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 혹은 이야기를 그려 넣는다면 인생의 흐름이 바뀌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선택에서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 예전과 다른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흐름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보고, 해체하는 것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관상과 점을 보더라도 자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음을 한탄하거나, 혹은 잘못된 점과 관상 등으로 인해 거기에 매여 자신은 이런저런 사람으로 규정하며 사도세자의 뒤주처럼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대사이다.


한명회: 거사를 일으킨 자들의 면면을 낱낱이 보았을 터인데, 그 관상은 기록해 두었소? 기록하시오. 난을 즐기는 자들의 특징을 상세히 기록해두면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할 수 있지 않겠소?


김내경(송강호): 그날 당신들의 얼굴에 뭐 별난 거라도 있었던 줄 아시오? 염치없는 사기꾼 상도 있고, 피 보기를 쉬이 여기는 백정의 상도 있고, 글 읽는 선비의 상도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얼굴들이었소.


한명회: 허면?


김내경: 그냥 수양은 왕이 될 사람이었단 말이요.


한명회: 뭐요?


김내경: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요.


한명회: 그렇다면 우리의 역모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을 거란 얘기잖소.


김내경: 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고 있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가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가 부서지듯이 말이요.


한명회: 저주하는 것이요?


김내경: 내 처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이리 보오. 묘한 상이요. 천박한 것 같으면서도 고귀하고. 헌데 끝이 좋지 않구려. 당신 목이 잘릴 팔자요.




한번뿐인 인생, 한 번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파도에 올라타 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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