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일,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을 떠나 13시간의 비행 끝에, 창밖에 보이는 인천 영종도 풍경은 15년 전 한국을 떠나갈 때와 다름 없었지만, 어느새 이방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방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 뜻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다른 나라에서 15년을 살다 보니 한국은 이제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여권은 대한민국이지만, 스스로를 반쯤 한국인? 아니면 국가라는 개념을 벗어버린 그냥 개인 정도로 생각한다.
무엇이 이방인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해외에 사는 재외동포는 약 7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단순히 해외에 거주한다는 것이 '이방인'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나의 삶의 방식과 사고가 한국사회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조류를 타고 가는 물고기 떼를 벗어나 버린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말이다.
'이방인'이란 단어는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그 단어에는 '낯섦'에서 오는 외로움, 소속되지 못한 느낌이 들어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슬프지는 않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도 될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 살더라도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의 총량이 다르기에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때가 자신만의 흐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방인'으로 느끼지 않을 때는 환대를 받았을 때다. 공항에 마중 나와 준 가족들의 뜨거운 환대와 장모님의 세밀하면서 따뜻한 배려는 그 '낯설다'라는 느낌이 생각나지 않게 해 주었다. 쉴 새 없는 이야기와 웃음 속에 '이방인'이란 단어가 녹아버렸다.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이방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살아, 어딜 가나 문자 그대로 '이방인'이지만 누군가의 '환대'는 '이방인'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낯섦'이 누군가와 '앎'으로 변화하고, 그 속에 오고 가는 따뜻한 말과 웃음이 외로움을 없애주기에 그럴 것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가족에게, 지인에게, 이방인에게 환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모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절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