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고통에 '쉼'이 없다면 지옥일 것이다.
몸살로 온 몸이 꽈배기가 꼬인 모양처럼 꼬여만 간다.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흐르고, 급기야 '아이고'라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를 숨을 내쉴 때 함께 내어 뱉는다. 그러면 잠시나마 고통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그 고통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고통을 조금이나마 벗어나 볼까 하는 마음에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도대체 '아이고'란 단어가 어디서 왔을까? 집 떠나와 해외에 산지 벌써 16년째다. 평소에 '아이고'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더라면 이해가 되었을 테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고'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어릴 적 보았던 초상집 풍경이 떠오른다.
삶과 죽음의 의미도 모르던 시절, 초상집은 맛있는 것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좋은 놀이터였다. 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그 집 앞마당에 천막이 펼쳐지고, 안방에는 빈소가 마련되었다. 상주와 가족들은 삼베옷을 입고, 문상객을 맞이 했다. 그때 하는 말이 '아이고'였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문상객들이 올 때마다 쉼 없이 내뱉는 그 말.
고인을 잃어버린 슬픔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말에는 고인에 대한 추억과 감정이 들어있다. 그 감정에 따라 '아이고'가 저음이 되기도 하고, 고음이 되기도 한다. 때론 절규가 되기도 한다. 그 음성에 따라 문상객들의 감정도 변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지막 삼일 째에는 '아이고'란 말은 점점 잦아든다. 상주와 가족들이 삼일 밤낮으로 외쳤던 까닭에 목이 쉬었고, 몸이 지쳤기 때문이다.
어느덧 그 슬픔도 '아이고'처럼 잦아든다. 다 내뱉었기에.
초상을 치르는 날부터 상주 집을 도와 문상객에게 음식을 차려주고, 꽃상여, 장지(葬地) 등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었던 마을 사람들도 그 '아이고'의 장단에 동화된다. 삼일 동안 함께 땀을 흘리면서, 술도 한잔 하면서, 묵혀왔던 서로에 대한 감정들을 '아이고'의 장단에 맞춰 다 날려 보낸다.
꽃상여는 장례식의 정점이자 마침표이다. 꽃상여는 무겁다. 상여를 매는 두꺼운 나무가 어깨를 짓누르기에 마을 장정들은 저마다 수건을 어깨에 걸친다. 하지만 장지까지 가다 보면 그 고통은 축적되어 배가 된다. 장지에 다가갈수록, 고통이 클수록, 그들은 상여 소리꾼의 추임새에 더 큰 소리로 화답한다.
고통을 내뱉어야 고통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지에서 고인이 안장되고 상주가 위령제를 하면 그렇게 내어 뱉었던 '아이고' 소리가 침묵으로 바뀐다. 다 내뱉었기에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아픔과 슬픔으로 바뀐 것일까?
할아버지의 꽃상여도 그랬다. 다 내뱉었기에 마지막 위령 제때는 안식했다. 할머니의 '아이고' 소리도, 눈물도 어느새 날아가버리고, 할머니는 담담하게 '좋은 곳으로 잘 가시게'라며 담담히 말했다.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아저씨들의 어깨는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함께 추임새를 넣고, 외치는 와중에 어떤 희열을 느꼈던지 얼굴이 밝았다.
독감으로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들이 말했던 '아이고'가 올라와 나를 살린다. 6월에 있었던 교통사고의 후유증도, 묵혀 있었던 만성피로와 마음의 상처들이 '아이고'를 통해 어느새 다 날아가 버렸다.
삶에서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아이고'처럼 고통에 '쉼'을 주고, 다 내뱉어 버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견딜만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아마 진통제가 없었던 선조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아이고'와 함께 내뱉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출처:pix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