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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의 '리베카'

[음악노트] 이민자의 애환

by 싱클레어

요즘 슈가맨 3에서 화제가 된 가수 양준일과 그의 곡 '리베카'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가수 양준일은 L.A. 이민자의 자녀로 한국에서 가수 생활을 하다 비자 문제 및 여러 가지 문제로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접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곡 '리베카'는 거의 30년이 흘렀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민자의 애환이 느껴졌다. 이민생활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쓸쓸함, 외로움, 허탈함이 '리베카'라는 가사에 스며 있어서 그런지 L.A. 에서 6년을 살았던 나의 기억들과 맞물려 '리베카'는 최근 매일 듣는 노래가 되었다.


** 가사

기약 없이 떠나버린 나의 사랑 리베카

조각처럼 남아있어 내 가슴속에

그리움도 원망도 아름답긴 하지만

너의 진실을 모르는 채 돌아설 수는 없어


*이제는 말을 해줘요


감춰진 진실 말을 해줘요 리베카

나 혼자 간직하려

눈물을 멈추리라 나의 사랑 리베카

눈물을 멈추리라 나의 사랑 리베카


L.A. 는 한인 이민자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대략 50만-150만 명 정도가 L.A. 인근에서 살아간다. S. Alvarado St. 와 W. 6th St. 가 만나는 곳에 맥아더 공원(MacArthur Park)이 있다. 맥아더 공원에 가면 히스패닉 사람들이 점령하다시피 가득 모여 있다. 거기서 작은 시장도 열리고, 주변의 노점들과 사람들이 오고 가며 붐비는 곳 중 하나이다. 그리고 W. 6th St.로 West로 가면 북창동 순두부 등 한국 식료품 점들과 한인 타운이 나온다. 나는 L.A. 한인 타운으로 갈 때는 항상 S. Alvarado St. 에서 W. 6th St.로 우회전하는 길을 이용했다. 그래서 맥아더 공원을 종종 갔었고, 거기서 히스패닉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리베카'의 노래를 들었을 때 맥아더 공원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 감정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쓸쓸함, 외로움, 허탈감이었다. 그것은 맥아더 공원의 히스패닉 사람들에게서도 나에게서도 발견한 감정이었다. 타지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사람들하고의 정감 있는 관계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관계가 안정화될 기간까지 사람들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로 금방 떠나기에 마음을 좀 열었다 하면 작별을 고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리베카'의 가사에서 '리베카'라는 단어만 없으면 이 노래는 흔한 사랑 이별 노래일 것이다. 한국말을 하면서 영어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리베카 이전의 이름의 모습과 리베카의 영어 이름 속의 모습이 서로 다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언제든 영어 이름을 바꿀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여기저기로 떠나야 하는, 그래서 오랫동안 누군가를 만나서 사귐을 이어가기란 정말 힘든 타지의 인간관계이다.


'리베카'의 가사에서도 아무 말 없이 사랑하던 그녀가 떠나버렸을 때, 미국은 워낙 넓고,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에 리베카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왜 떠나야 했는지 그 이유라도 알았으면 가슴이 이렇게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공허하지도 않았을 텐데...


기약 없는 이별을 마주한 채 또 새로운 만남을 만나야 하는 건지...


더 이상 이별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리베카'의 가사에서도,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맥아더 공원의 히스패닉 사람들에게서도, 나에게서도 느껴졌다. 영어 이름이라는 가명 속에 살아가며 결국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혼종인이 된다. 이 감정들을 잘 살린 노래가 양준일의 노래 '리베카'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1990년대 초의 한국인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진 사람들에게는 잘 와 닿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며 체류하기에 좀 더 공감되지 않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30년 전의 노래가 지금에서야 나에게 공감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맥아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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