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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마음의 표지

[일상]

by 싱클레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중 하나가 설거지이다.


결혼 후 우리 부부는 가사를 반반씩 분담을 하였다. 스스로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가사로 정했다. 나의 담당은 설거지, 청소, 빨래이다. 지난 10년 동안 잘 수행해 왔다. 최근들어 설거지는 가면 갈수록 미루게 되고, 싱크대에 수북이 쌓일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오늘 아침 부엌에 가서 수북이 쌓여 있는 식기들을 보니 답답하다. 쌓여 있는 식기들을 보아도 설거지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더 답답하다.


결혼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신이 집안의 살림에서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부엌이 지저분하면 못 견디는 사람이다. 거실, 방, 책상이 지저분한 것은 참을 수가 있는데 부엌이 지저분한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아마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청결과 위생을 수없이 강조했기에 그런 것 같다. 어머니는 집안이 지저분한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식사하기 전 모든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청소를 시작하신다. 꿀잠의 끝부분에 찬바람을 맞는다는 것은 고통이다. 어릴 적부터 마음속으로 이것만은 절대 어머니를 닮지 말자 다짐했고, 결혼 전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에는 그것을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부엌이 깨끗할 때의 그 상큼한 느낌은 중독과도 같아서 끊을 수가 없다.


요즘 왜 설거지를 하기 싫을까?를 질문해 보며 삶을 돌이켜 보았다. 설거지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다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엇인가 마음속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가 일상을 계속 미루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그것에 집중하는 순간 현실을 직면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러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모든 식기는 사용했기에 오늘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밥을 못 먹게 된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다면 하루빨리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단 설거지부터 하고 마음을 성찰해야겠다.


설거지는 마음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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