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내 마음은 움직이지 못했다
장교로서의 첫걸음이었던 소대장 시절, 꽤 유능한 리더가 되고 싶었습니다.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열 살이나 많은 부사관 간부들을 지휘해야 했고, 소대라는 집단에 속한 수십 명의 용사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일은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30명 규모의 소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함께 움직이며 조직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매번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취감이 조금씩 커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트레스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분명 더 좋은 리더로 성장하고 있는데, 왜 마음 한구석은 이토록 답답한 걸까?
잦은 야근으로 인한 체력의 한계인지, 소대를 지휘하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고되어 그런 것인지 고민했지만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또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찾던 그 답은 예상치 못한 찰나에 찾아왔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부대의 계획에 맞춰 소대원들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날이었습니다. 유독 그날따라 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어 예상보다 일찍 일과가 마무리될 것 같았고, 저를 포함한 소대원들 모두가 조기 휴식의 설렘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정적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부대 계획이 변경됐으니까 기존 일정 취소하고, 바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해.
전화를 끊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 순간, 가슴속에서 징하고 어떠한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혔던 스트레스의 실체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높은 업무 강도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제 모든 계획과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철저히 수동적인 상황' 그 자체가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30명 소대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부대를 지휘하는 그곳에서의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정작 계획 하나 저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대행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저를 소리 없이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이 매끄럽게 흘러가기 위해서는 계획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맞는 통제도 필수입니다. 군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조직에서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계획한 대로만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이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조직 단위로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개인의 희생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삶이 반복되고 지속될수록 '나'라는 개인의 형체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던 지시들도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무런 필터링 없이 손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당연히 조직의 방향을 일개 소위였던 제가 결정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어떤 행동을 할 때 제가 어떤 이유로 해야 하는지 고민할 틈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고민할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쏟아지는 지시에 그저 기계적으로 '반응'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 살아남기 위한 관성에 의한 '순응'은 역설적으로 저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수동적인 삶의 반복은 사람을 지독하게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영역이 좁아질수록, 인간은 자신의 효능감을 잃어버린 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해진 궤도 안에서 시키는 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낸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은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문득문득 공허함이 밀려온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은 당신이 계획한 지도 위에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 등 뒤에서 밀고 있는 힘에 의한 움직임입니까?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조직에 속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만큼은 나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각이 없다면 우리는 그때 그 시절,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저처럼 30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능한 리더일지언정, 정작 자신의 마음 하나 지키지 못하는 방관자가 될 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수동성의 사슬을 끊어내는 첫 번째 걸음입니다.
그렇다면 20대 시절의 저는 왜 그토록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까요? 돌이켜보니 제가 내렸던 수많은 선택 뒤에는 '진짜 나'가 아닌, 사회가 설계한 프레임이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나서야 마주하게 된 불편한 진실을 공유합니다.
제3화. 지금 당신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