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통제 속에서 배운 역설적인 자유
2015년 1월 18일.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고등학교 교복을 제대로 벗기도 전에 군인이 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생도가 되기 위해 기초군사훈련에 입교했습니다. 길고 길었던 10대를 마무리하고 첫걸음이었던 20살, 이제 막 소년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저희를 군인으로 만들기 위한 그 기초군사훈련은 지독하리만큼 잔인했습니다. 훈련의 방법과 그 강도는 우리의 밑바닥이 어디인지 적나라하게 알려줬고, 매일 밤 조금씩 하지만 처참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실 그 당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자유의 박탈'이었습니다. 입학 기수의 숫자라는 이유만으로 팔굽혀펴기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70개 넘게 하는 것도 죽을 맛이었지만, 그곳에서는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옆 사람과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없었고, 배가 고프다고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 또한 누군가의 허락과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수동적인 삶'의 극치였습니다.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은 저를 빠르게 무기력의 늪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이런 비효율적인 생활이 왜 필요한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명령에만 기계적으로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답답함은 이내 거부감으로, 거부감은 독한 불평불만으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칠 대로 지친 저는 어느 순간부터 훈련에 진심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계 초침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주어진 상황과 교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선배들을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만 수차례 되뇌며 그저 버티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수록 그 고통은 커졌고 선명해졌습니다. 부정적인 태도는 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당겼고, 어느새 주체성을 잃은 채 환경에 짓눌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주어진 달콤한 휴식 시간에 한 함께 훈련을 받고 있던 동기생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그 친구 역시 저와 똑같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훈련을 받으면서 항상 제게 물음표를 던져주는 동기였습니다. 분명 같은 나이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훈련을 받고 있는데 저를 포함한 다른 동기생들과 달리 그 친구는 풍기는 아우라가 달랐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눈에 띄었고 그 누구보다 군인이, 그리고 이 지독한 기초군사훈련이 적성에 꼭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훈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 그 동기생을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매번 그렇게 지켜만 봐왔던 그 동기생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저는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동기생 역시 이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였던 모습과 달리 저와 다른 동기들이 느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20살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히어로 만화영화를 보면서 그 주인공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지 알게 되는 순간만큼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친구만 다른 동기생과 다르게 보였을지 궁금한 찰나, 그 친구의 마지막 말 한마디로 인해 왜 그 친구가 달리 보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훈련, 죽을 만큼 힘들지만 결국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 어차피 해야 하는 훈련이라면 그냥 이 악물고 하는 거지
그 동기생과 저의 차이는 ‘그 훈련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의 말은 제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 보면 바꿀 수 없는 외부 환경을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 지나 간 시간, 그때 당시의 상황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라도 오직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삶을 대하는 태도나 마인드입니다. 가혹한 환경은 내 행동을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지만, 그 환경을 바라보는 내면의 자유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주체적인 삶'이란 모든 상황을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 전지전능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통제가 가득한 환경 속에서도 '나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주체성의 시작입니다.
"다 이렇게 하는데", "어쩔 수 없지"하며 무기력하게 포기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외치며 자칫 힘들고 지칠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만의 의미'로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지독한 통제 속에서도 역설적인 자유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당신 마음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당신 마음가짐 하나만큼은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의 중요성을 배우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려고 했지만, 막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인 줄 알았던 저의 "아무거나 다 좋아"라는 말이 무서운 습관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제5화. "아무거나 다 좋아"라는 말의 위험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