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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Jun 06. 2024

시대가 남긴 상흔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내가 애틋하게 생각하고 또 존경하는,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전쟁을 겪은 분이시다. 할머니께서 이제 막 8살이 될 무렵, 눈 내리던 철원의 어느 겨울날 포화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부모님을 눈앞에서 여의셨다.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목숨은 지켜야 했기에, 남매는 두꺼운 솜이불을 여러 겹 덮어쓰고 숨 죽인 채 방에 숨었다. 덕분에 군인이 집 안까지 들어와 코앞에 들이닥쳤지만 들키지 않고 남매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모님을 묫자리에 모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시 남매의 나이가 너무 어려 시체들을 한데 모아놓은 시체더미들 위로 사람들이 부모님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품에서 놓지 않고 너무 울어 살아남은 어른들이 강제로 떼어 놓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슬픔을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부모님을 더 바라볼 수 조차 없게 됐으며, 제대로 장례를 치러드리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다. 방금 막 8살이 된 어린아이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철원에서 미군부대 차를 타고 대전으로, 대전에서는 이리까지 산과 들을 건너며 걸어갔다. 오빠와 당신 둘 뿐이었다. 전북 이리에 도착한 뒤 고아원에서 고모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상봉을 했는데, 시대의 빈곤과 불안정함은 혈연의 돈독한 믿음마저도 배반하게 했다.


친척들로부터의 불합리한 대우, 열심히 지키고 모아 온 것들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돌아갈 집이, 부모님이 사라져 오갈 곳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할머니께서는 참고 또 참으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원치 않던 결혼도 마지못해 하게 됐다. 


그땐 중매쟁이에게 돈을 주고 중매를 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기 싫어도 쉽게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한 게 아니라 '하게 만든' 압박이 있던 분위기였다.


결혼은 할머니에게 상처를 남겼다.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남하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양육과 살림을 꾸리는 데 있어 긍정적 상호작용이 어려웠다.


할머니에게 결혼생활은 그 세월 동안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기쁨과 수많은 고통이 상존하던 시절이었을 것 같다. 버팀목이 없고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곳이 없는 서러움과 외로움은 겪어보지 않는 자는 모를 것이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회상하기 힘든 기억으로 얼룩졌다. 허구의 독립으로 속은 여리지만 겉모습은 다소 거칠고 강인해질 수밖에 없던 배경엔 '가족'에게서 오는 단단하고 결속력 있는 사랑의 부재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 가족에게도 많든 적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만큼의 사랑' 그건 어리면 어릴수록 더 고프고, 없으면 서럽고 슬픈 것이다. 쓰린 가슴에 새살이 돋기도 전에 현실을 악착같이 살아야 했던 나날이었다.


긍정적 자아상, 안정적인 정서의 형성은 자신에게도, 그 뒷세대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시대가 남긴 상흔은 그렇게 개인에게서 가족에게로, 공동체에서 사회에 영향을 준다. 신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유전된다.


전쟁에서 파생된 아픔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영향이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끊어낼 수 있는 건 오직 물려받은 세대, 개인의 피나는 노력뿐이다.  세대는 절대 겪지 않게 하겠다는 모든 방면의 노력.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대물림을 끊어내어 삶을 양지로 이끌어낸 사람은 많은 희생을 치러 행복을 이룩해 낸 사람인 것이다. 대단한 의지와 사랑을 가진 강인한 사람이다.


저마다의 꿈을 꿀 수 있는 기대와 설렘, 가족의 온정이 무엇인지 악착같이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다정함을, 그 단란한 행복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게. 국가와 사회가 권력에 대한 희생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감은 이런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 같다.


할머니는 총명하며 영특하고 비범한 분이셨는데 한 번 보고 듣기만 해도 절로 기억하고 뭐든지 금방 습득하셨다. 무엇이든지 능히 잘하셔서, 증조할아버지께선 할머니를 기특하게 여기며 칭찬하고 배움을 장려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당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실 때의 표정과 목소리, 그 진중한 분위기와 포근한 향기를 기억한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보고 듣고 직접 겪은 그 시대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해주셨다. 


그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서글프고도 슬펐지만, 역사 속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에서 동시에 흥미로웠고 어쩔 땐 자부심마저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할머니가 참 좋았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할머니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좋았고 할머니와 뭔가 같이 하거나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요리를 맛보는 게 좋았다.


그런데 나는 왜 할머니와의 추억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왜 자주 찾아뵙고 얼굴을 보고 더 대화하지 않았을까. 왜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이제와 할머니와의 대화내용을 녹음하지 않은 것,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놓지 않은 것, 내가 먼저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 할머니와 근사한 음식이나 장소를 대접하거나 선물 하나 제대로 못 드린 것 등의 많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더 이상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팠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한 많은 에피소드가 단지 내 머릿속에만 있어,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렇게 잊힌다는 게 너무 두렵다. 휘발되지 않게 내가 망설임 없이 함께한 모든 순간을 꼭꼭 보관해 둘걸...


더 행복하게 해드렸어야 했고 아팠던 세월보다 훨씬 많이, 함께 간직할만한 좋은 추억들을 만들었어야 했다. 많은 자책과 후회가 들고, 또 죄송하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정말 못하시는 게 없는 분이셨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대담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며, 씩씩함과 용감함, 강인함과 동시에 고귀하고 착한 심성을 잃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를 볼 때면 너무나도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한 사람으로서 보다 넓은 세상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펼치며 자유롭고 멋지게, 높이 비상하는 새처럼 자신의 재능을 널리 떨치면서 커리어우먼으로서 살아가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든든한 보호 아래, 자신의 것을 온전히 누리고 당신이 하고 싶으셨던 것처럼 자식들을 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곳에서 키우며 꿈들을 마음껏 지지해 줄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 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할머니만 외롭지 않고 아픔 없이 행복하다면, 그래서 마음에 짐 없이 그저 즐겁게 인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 또한 그게 내 기쁨이었겠지. 더없이 행복하겠지.


그땐 할머니께서 친척집에서 얼마나 눈치를 많이 봤어야 했을지 어떤 대우를 받아오셨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결혼 후 생활고와 수많은 갈등으로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떻게 모진 세월을 견뎌내셨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너무 무지하고 무심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모르고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상처를 되짚고 가슴 아프셨을 할머니. 그 마음이 슬픔으로 물들어가는 줄은 모르고 멍청하며 어리석게 굴었다.


지나온 과거보다 현재에 집중하며, 그 아픔이 잊히도록 내가 할머니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아름다운 장소를 함께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추억을 만들었어야 했다. 매일 안부를 묻고 사진과 영상으로 우리 시간을 기록했어야 했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남들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하고 있던 일을 나는 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정성을 쏟지 않고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기고 살뜰히 챙겼어야 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이젠 너무 늦어버렸다는 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고 죄송스럽기만 다. 그저 하늘에서 평온하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이따금씩 실감 나지 않는다.


할머니께서는 떠나시는 순간까지도 현실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살며,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면서 무엇이든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셨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섬기노니 하늘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길, 보고 싶고 그리웠던 가족들을 만나서 편하게 서로 못다 한 이야기와 사랑을 실컷 나누시길 바라며 손녀로서 조심스레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해봅니다.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분이셨는데. 할머니가 제 곁에 계신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깊은 애정으로 이어진 우리라는 걸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이 다채로운 세상을 더 다양하게 경험시켜드리지 못한 게,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할머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게 가장 속상합니다. 이젠 할머니께 기도를 올릴 때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다정한 성품을 지닌 곱고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해사한 미소를 띤 얼굴이 햇살처럼 빛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네게 알려주셨듯, 곁에 있는 가족들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보내야겠죠.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보다 열심히, 총명하고 현명하게 지혜를 발휘하여 잘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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