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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Oct 05. 2024

반파된 채 표류하다

여전히 방향키 없이 흔들리는 나의 삶

가을인 줄 알았는데 여름이 지속됐던 9월과 달리 10월은 초겨울인 것처럼 확 춥게 느껴진다. SNS를 들여다볼 때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늘 그렇듯 조바심이 나게. 그래서 내가 하는 기록은 왠지 진부한 느낌으로 점철된 듯하다.


바랐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던 것도 잠시. 벌써 3달째 글을 안(못) 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글을 쓰기 두려워졌다.


누구에게 무척이나 잘 보이려 글을 쓰는 것은 아니건만 알량한 글솜씨가 탄로 나는 것만 같아서 머릿속에 간신히 떠오른 글감도 금방 휘발되고, 지연되고 한없이 미루어 어떻게 이어가나 엄두가 안 날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다칠까 봐 망칠까 봐 엄두를 못 내거나 회피할 때가 많았다. 오죽하면 나는 넘어지는 게 무서워 두 발자전거를 익히지 못했다. 예측불가한 상황으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지레 겁먹었다. 낯섦에 대한 거북함도 한몫했다.


SNS를 보면 시간도 빨리 가거니와 왠지 자꾸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어 앱은 지우고, 그나마 나을 거란 생각으로 팔로우한 계정의 소식을 보려 웹으로만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SNS 중독인 건지 습관적으로 어느새 기웃거리고 있다. 어느샌가 열등감과 좌절감, 상대적 박탈감은 비대해져 그림자를 드리운다.


습관적으로 실패하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의 반동으로 열심히 노력하긴커녕 생각에 잠식되어 오히려 겁냈던 방향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닐지 막연함에 빠진다.


지금까지 어리석게 자기 삶을 스스로 망친 지팔지꼰의 인간으로 살아온 것만 같아 불현듯 공황이, 강한 열등감과 패배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과거에서 떠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이 철철 넘쳐 끌어안고 썩어가는 기분이다. 괴저에서는 시취가 풀풀 난다.


나는 침몰하는 중일까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는 중일까. 그럼에도 심장은 뛰고 있고 아침은 언제나 찾아온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모를 만큼 고동소리의 원천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파동을 일으킨다.


밝고 아름답기만 했던 햇살이 잔인하고도 두렵게 느껴진다면, 도대체 희망은 어디에 있는지 되물어야 하는 시점이 온 건 아닐까. 어슴푸레한 새벽빛은 아름답고도 황홀하게 슬프고 잔혹하게 두렵다. 추위가 더해지면 서늘한 느낌에 뼈가 아릴 정도로 떨리는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나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어쩌면 늘 그랬다. 자신이 없고 주관이 없고 자아가 없다. 그저 휘둘리는 삶. 그럼에도 낯섦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은 새장 속에 갇혀 날개 한 번 쭉 펴지 못하는 유약하고 성격 나쁜 못생긴 새 한 마리.


발치에 있는 거라곤 역시 고약한 내 나는 그런 것들. 흰 옷에 묻은 얼룩처럼 거슬리는 불쾌한 체취, 박박 문질러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만 싶은 찝찝한 존재감이 잠식해 온다.


수많은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나는 그걸 잡기는커녕 자발적으로 뿌리쳤다. 거기에 하지 말았어야 할 언행까지. 그렇게 어리숙하고 천치 같았다. 그게 문득 너무나 사무치게 잔인한 상실이라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그리고 꾸역꾸역 삼킨다. 음식이 아닌데도 체할 것처럼.


내가 그랬다는 게 그 흔적 자체가 도려내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속상하고 괴롭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게 내 의식 안의 어떤 기전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이 마땅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기어코 오늘도 상기해버리고 만다.


후회하는 건 지금까지 가득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지금도 후회할 일을 만들고 있고 충동적이며 상처를 주고 또 자책한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우습게도 어떨 땐 혼자 상처받고 혼자 괴로워한다. 눈덩이처럼 부정적인 감정과 죄책감은 불어나고 있다.


누군가를 탓하기엔 어린 나이가 아니며 너무 비겁하고 한심하다. 그럼에도 비열하게 합리화와 변명만 가득해왔던 나다. 그럼 결국 지능의 문제일까 재능과 능력의 문제일까, 의지의 문제일까 아님 이 총체적 문제의 합작일까. 결국 자존감이란 건 쌓기도 전에 무너지고 나는 다시 시간을 되돌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씩씩하게 받아들이고 올곧은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강한 마음으로 기운차려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밀린 숙제와 회한을 끝내고 나아갈 수 있을까. 여러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물음표만 가득한 채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므로.


자존감이라는 게 자아라는 게 뭔지 몰라서 나는 여전히 어렵고 고독하고 어리숙하다. 그게 다 내가 멍청해서인가 싶어 확신과 자신감은 더욱더 쪼그라들고 만다. 시간은 기다림 없이 빠르게 앞서가 섬뜩한데 생각과 신체는 얼어붙은 채 멈춰버렸다.


점점 쪼그라들다 작은 점이 되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질까 봐 무섭다. 그 작은 점마저 닳고 닿아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려 들까 봐.


오늘도 난 파도에 이리저리 속절없이 흔들리며 표류한다. 반파된 채로 휘청이며 불안하게. 목적지를 모른 채 위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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