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견딘걸까?
2023년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면서 느낀 기분을 나도 똑같이 느꼈던 한 해였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자신을 괴롭히는 프란츠 크로머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한없이 우울해진다. 나에게는 그 1년이 프란츠 크로머를 만났을 때와 같았다. 전편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했지만, 2023년엔 내가 관리해야하는 업체들때문에도 정말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내가 회사에서 처음 맡게 된 업무는 마트에 입점해 있는 업체들을 관리하고, 마트에 들어오는 단기 행사 계획을 짜는 일이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땐 그렇게 어려운 업무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한참을 빗겨갔다. 어려운 업무가 아니라 사람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업무였던 것이다. 입점해 있는 30여개의 업체들은 상담할 때마다 곡소리를 냈다. 사정이 안 좋아서, 본인 사업이 힘들어서 수수료를 내려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마트에 입점해 있는 업체들은 가스비, 수도비 등 자잘한 관리비들을 내지 않는다. 단 하나, 매출에 대해 계약한 수수료만큼만 우리 마트에게 내면 그걸로 끝이다. 사실 그 조건을 들었을 때 나는 마트 밖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그들은 정말 좋은 조건에서 사업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정말 이상했던 건, 그들은 정말 갖가지 불만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트에 조금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왜 마트에 사람이 없냐 부터 시작해서 옆에 입점한 경쟁업체와 툭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20대였던 나는 50~60세를 훌쩍 넘는 그 자영업자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이런 업무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업무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세 가지가 있다. 간단하게 그 일화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살면서 ‘사람’때문에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시기가 없었기에, 아직도 그 경험들이 불쑥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가장 먼저, 금은방을 운영하는 한 사장이었다. 그녀는 툭하면 지각을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른살이나 어린 나도 지각 한 번 안하고 편도 1시간 30분의 거리를 매일 통근하는데, 그녀는 정말 하루도 빠짐 없이 지각을 했다.(심지어 집이 가까웠다) 게다가, 매출을 포스기에 찍지 않고 현금으로 몰래 받는(바로 계약해지가 될 수 있는 사항임에도) 뻔뻔함도 보여주었다. 1년동안 담임 선생님마냥 사장님을 지켜보던 내가 아직도 떠오른다.
두 번째는, 나에게 내선 번호로 전화해서 욕을 하던 업체 알바생이었다. 입점해 있는 한 업체에서 알바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근무태도가 정말 좋지 않았다. 항상 다른 업체에 놀러가서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던 사람이었다.(나이가 60대였다) 그래서 업체 사장에게 주의 좀 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전했는데, 다짜고짜 내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어린년이!” 라고 했던. 정말 무식했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은,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마트 사정상 계약 해지를 하려고 했던 업체 사장이었다. 그는 소송까지도 가겠다는 태도였고, 우리에게 협박을 했다. 내가 너희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너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돼! 라는 태도였고, 사무실까지 나를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었다.
쓰다 보니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화들인데, 지금은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너무나 벅찬 일들이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그 일은 너무도 힘들었다. 30살 차이나 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하는 것, 심지어 배려와 존중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기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2023년의 말미에, 그 업무가 끝나가던 시기에(다른 업무로 발령을 내달라고 희망서를 썼다),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던 자영업자들은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어. 나는 조금 더 성숙하고, 소통에 능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본인 사업도 잘 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우리 마트에 입점해 있는 업체들은 더더욱 많았기에, 정말 지쳤었다. 사람에게 질린다는 게 이런거구나. 내가 감정쓰레기통이나 되려고 그렇게 오랜 기간 공부를 해서 회사에 들어왔나?라는 생각이 매일 밤 내 눈에서 진한 슬픔이 묻어나오게 만들었다.
내향적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업무를 해야했으니. 그 1년은 앞으로도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시기는 검은색이었다. 눈물로 얼룩진, 검은색 기억들. 그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성장하는 한 과정일까? 아니면 나는 겪지 않아도, 참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견딘걸까? 끝없는 의문이 드는 검은색 기억들.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