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는 게 두려웠던 날들

부장님 왈 “꼬우면 이직 하던가”

by 싱클레어

202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마트 가는 걸 두려워했던 시기였다. 특히나 입사 후 초반 3개월은 출근하는 길이 지옥같았다. 일이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입사 초반 사람 때문에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마트가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마트에 가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식료품을 마음대로 고르고, 가끔은 행사하는 간식 거리들을 사갈 수 있는 마트를 누가 싫어할까? 그런데 마트에 ‘입사’한 나에게 그 당시 그곳은 너무나도 두려운 공간이 되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일하게 될 대형마트의 첫 인상. 알록달록 예뻤다. 사과, 복숭아, 참외 등 저마다의 선명한 색깔을 뽐내는 과일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가까이 가면 달콤한 향이 나는 그 싱그러움이 좋았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생필품도 마음에 들었다. 겨울에 입사했기에 밖은 단조롭고 추웠다. 하지만 마트 안은 따뜻하고 항상 생기가 넘쳤다. 물론 내 적성에 맞춰서 온 직장은 아니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내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무실에 들어가, 팀원들과 부장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깨졌다.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나는 사람을 쉽게 싫어하지 않는데, 입사 후 만난 두 명의 사람은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첫번째는 사수였다. 공채 선배였고, 내가 배울 업무를 가르쳐 줄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유통업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배우려는 의지만큼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귀찮아했다. “내 코가 석자에요”라는 말로 제대로 업무를 알려주지 않았고, 찾아가서 알려달라고 말을 하면 싸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나중에”를 반복했다. 그 나중에는 영영 오지 않았다. 나는 절실히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업무 방법서를 읽고, 현장에 내려가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를 하기에 그건 충분하지 않았다. 유통업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이제서야 일을 시작한 내게는 가르쳐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다가간 사수는 얼음장같이 싸늘했다. 내 휴무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하면서, 내가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를 하면 휴무날 전화하는 인간이 어딨냐며 나를 심하게 다그쳤다.


나는 응원하고 감싸는 분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지만, 위축시키는 분위기에선 한없이 힘들어지는 사람이었다. 학생시절의 상황은 달랐다. 교수님은 모르는 것을 친절히 가르쳐 주셨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밝은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사실 아직도 이 회사가 첫 회사라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다) 냉혹하고 잔인했다. 적어도 난, 이제서야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입사를 한 후에 업무방법에 대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모르는 건 항상 물어봐서라도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실수가 심각한 결과를 만들수도 있으니. 사회를 겪지 않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해야한다는 게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수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부장님이었다. 나는 업무를 거의 혼자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마트의 동기에게 물어봐서 배우고(그 동기는 사수에게서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본사에 연락해서 배우고, 업무방법서를 읽으면서 배웠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문서 번호를 따야하는지도 몰랐던, 결재를 받을 땐 어떻게 해야할지도 제대로 몰랐던 신입이었다. 문서 틀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앞으로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업무를 해야할지 몰랐으니, 노력했음에도 실수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한 실수가 세무 관련 문제를 일으켰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눈물이 차올랐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무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팀의 대리님은 그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 부장님에게 와서 신입이니 누군가가 도와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부장님은 한 마디했다. “실수가 아니라 사고네. 그것도 못해?” 그 말은 아직도 내 가슴을 후벼판다. 혼자 아등바등 여기저기 물어보면서 일했던 내 모습을 우리팀 다른 직원들과 부장님은 분명히 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때 난 입사한지 고작 2개월이었다.


마트에 가는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 실수 이후로, 나는 소극적으로 변했고, 알록달록 예쁜 과일들이 이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트가 싫었다. 그냥 하던거 더 해볼걸.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내 표정으로 드러났다. 그 때의 난, 누가 봐도 우울해보였고 항상 힘이 없었다. 하지만 맡은 일은 하려고 노력했다. 3개월이 지나니, 혼자 배운 것도 어느정도 내 업무 능력이 되었고, 조금씩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부장님이 말했던 “사고” 이후로 부장님은 나를 괴롭혔다. 결재를 받을 때도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나에 대해 트집을 잡았고, 보여주기식 출장에 나를 끌고 다녔다. 시장조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백화점 출장에 데리고 가 본인은 쇼핑을 하고 나에겐 너 알아서 조사를 하라고 했고, 급기야는 웃음 뒤에 감추어진 어두운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꼬이직이 무슨 말인지 알아? 꼬우면 이직해라. 이런 뜻이더라고.” 나한테 하는 얘기였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쓸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때 너무 아무것도 몰랐다. 그건 괴롭힘이었고, 나는 회사에 신고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명확하게 말했어야 했다.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내가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나는 그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관심도 없는 마트에 들어와서 그런거야. 내가 진짜 일을 못해서 그런거야. 이렇게. 하지만 2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본 그 때의 난 최선을 다했던 신입사원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어떻게든 배우려고 물어보며 노력했고, 관심이 없는 직종이었지만 관심을 가지려고 공부했고,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어도 좋은 면만 보려고 했으니까.


마트가 두려운게 아니었다. 우리 마트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이 두려웠던 거다.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수는 조그만 마트로 발령이 났고, 부장님은 퇴직했다. 그들과 떨어졌다. 2023년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도 안쓰럽다. 몰래 화장실에 가서 쪼그려 앉아 울고, 집 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하면서 못하겠다고 울먹거리던 내가 떠오른다. 남자친구의 품에서 마트에 너무 가기싫다고 엉엉 울었던 내가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오늘도 난 오전 9시만 되면 여전히 열리는 마트에 다녀왔다.


”꼬우면 이직하던가“ 부장님의 비꼬는 그 말투와 사수의 싸늘한 시선들이 어쩌면 우리 사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그런 말들과 시선들을 들을 날들이 또 오겠지. 아마 이제 시작이겠지. 하지만 한 가지 배운게 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해도, 나는 나를 믿고, 내가 나에게 응원의 말들을, 따뜻한 시선을 끊임없이 보낸다면 그 말들과 시선들이 나에겐 아무런 타격도 없을 날이 올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