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취업을 했다

by 싱클레어

2022년 11월 무렵, 나는 언론사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유통업계 대기업 하나를 빼면 내가 서류를 제출한 곳들은 모두 언론사였다. 언론사 서류 전형은 거의 다 합격을 하고 필기시험을 남겨둔 곳들도 있고, 카메라테스트를 앞둔 회사도 있었다.


외무영사직을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시작하면서 좋았던 점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자기소개서를 쓰기도 하고, 면접 준비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서 브런치를 먹을 수도 있었다. 조금은 여유로운 듯한,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조그마한 불안감은 가지고 살았던 시기였다.


당연히 20대 후반에 취업을 하지 못했으니 불안했고, 그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11월말쯤이었던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주였는데,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다. 꼬박 2달을 기다렸으니까. 특이했던 건 실제로 가서 보는 게 아닌, 전화 사주였다는 거다.


내 사주를 보더니 사주선생님께서는 내 사주에 불이 너무 많다고 했다. 물로 태어났는데 불이 주위에 너무 많아서 증발했다나.. 아무튼 사주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써보도록 하고, 내가 이 당시 가장 궁금했던건 취업을 할 수 있는지 여부였기에, 그런 점에 치중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한 마디했다. "취업은 어렵지 않아요. 당장 다음 달에 취직할 것 같은데?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들어가서 엄청 힘들겁니다. 사람도 힘들게 할거고, 일도 적성에 안 맞을 거에요. 32살까지는 버텨봐요. 그 이후부터는 괜찮으니까."


아직도 사주선생님이 말했던 그 말이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나는 그 당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뒷 부분은 모두 잘라내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지워내버리고, 다음달에 취업할 거라는 말에 뛸듯이 기뻐했다.


사주선생님이 정말 용했던건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들어간 회사에서, 즉 지금 다니고 있는 마트에서 사람 잘못 만나서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기도 하고, 업무가 적성에 정말 아예 맞지 않아서 아직도 힘들기도 하다.


나는 12월 중순쯤 현회사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 날 하루종일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이 회사를 들어가는 게 맞을지. 점심을 만들면서 같은 회사, 다른 계열사의 대학동기에게 전화해 우리 회사에 대해 물어봤던 나. 그 때 그친구는 "절대 오지마. 대부분 사람들이 정말 비정상적이야." 그렇게 말을 했다.


또 합격한 후 바로 그 다음주에 연수원에 들어가야 했기에, 내 앞에서 날 기다리던 수많은 언론사 시험들도 그 자리에 남겨두고 갔어야 했다. 나는 결국 불안함에, 또 언제 합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사를 하겠다고 했고, 아직도 연수원 입소하던 날, 한 언론사가 1차 면접 시험이라며 2번이나 전화를 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 곳에 갔더라면 나는 지금 마트노동자가 아닌 기자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은 모두 내 선택이다. 어느날 '갑자기' 취업을 한 줄 알았는데, 어느날 '자발적으로' 취업을 '선택'한거였다. 그 때 입사포기를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또 달라져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책 《인간실격》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얼떨결에 전혀 모르는 곳에 취업한 나도,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현실을 사는 당신도, 너무 행복해 까무러칠 것 같은 기쁨 속에 사는 누군가도, 반드시 그 순간은 단 한 명의 예외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지나가다 보면, 분명히 그 모든 과정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 날도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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