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는 이유는,

by 싱클레어

하고 싶은 일을 끝끝내 뒤로 하고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건 마치 10년간 짝사랑해온 소꿉친구에게 용기 내서 고백을 했는데, 매몰차게 차이고 비통함 속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유쾌하진 않다.


지금 하는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여가생활을 즐기고,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어쩔수가 없다. 이제 3년차로 일하고 있고, 유통업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곳에 평생 있을거란 기대는 없다.


이런 생각은 신규직원 시절부터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을 했다. 마트에서 도망치기 위한 새로운 도전들을. 지금의 답답한 현실을 피하기 위한 정면돌파를.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1년차부터 했다. 채용공고가 뜨는 언론사 중 가고 싶은 곳엔 모두 지원했고, 다른 기업들도 직무를 홍보팀으로만 맞춰서 지원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트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마트 사무실의 내 자리에서 쓰고있다. 노력을 안했나? 그건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NCS를 풀었고, 점심시간엔 논술을, 출퇴근길엔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이직이라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언론사는 메이저가 아니면 너무나 박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회사는 연봉이 참 높다. 복지와 연봉이 깡패라 이직률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구식 조직문화와 답답한 인간들과 일해야 하는 대신, 돈을 많이 주는 회사. 그렇기에 다들 나가지 않고 있다는 걸 1년차에 깨달았다.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언론사라도 연봉차이가 너무 나면 지원조차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었다.


회사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을 할 무렵, 나는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달았는데, 그건 내가 조직생활보다는 혼자 일할 때 더 큰 효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어리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친한 친구는 있었지만, 공부를 하거나 활동을 할 때 혼자 할수록 훨씬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를 하고 뭐든 혼자하는 걸 좋아하고 잘했다. 스스로 계획을 짜고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게 나에겐 제일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하고, 그 안에서 인간관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유독 그런 것을 견디지 못했고, 특히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들과 트러블이 생겼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인지! 이제는 정확히 안다. 《나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일을 할 때 가장 큰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다른 '회사'들에 이직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회사'라는 '조직'보다 '나'라는 '개인'이 더 잘 맞는 사람이 나인데, 그런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들어간다고 나아질까.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직생활인데, 다른 곳이 천국일까?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 길을 명확히 찾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만은 회사를 통해 얻게 되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은, 도망쳐 도착한 곳이 잘못된 곳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걸 아는 게 중요하다고.

이전 13화가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