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암벽에 부딪힌 파도처럼 으스러지기도 하고, 우물 안에서 나오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바닥을 쭉 펴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가 바닥으로 다시 떨어지는 개구리처럼 넘어지기도 한다. 완벽한, 흠 없는 인생이란 없다. 그래, 난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금 깨닫고 있는 건, 인간은 모두 그렇다는 거다.
처음엔 나의 과거가 마치 흰 셔츠에 묻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성가셨고, 창피했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어려워졌던 집안 형편도, 공부한 것에 비해 이루지 못한 꿈들도, 어린 시절 사랑했던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의 길로 갔던 나의 미련도. 너무너무 사랑했던 18년 된 나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 장례식에 가지 못하고 회사를 가야 했던 그 순간조차도. 심지어는 어제 책을 읽지 않고 누워있던 것에 성가셨던 나의 감정도. 그 모든 과거들이 사실은 아직도 불편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모든 순간들, 그 모든 과거들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 '과거들의 나'도 분명한 '나'였고, 그 모든 수많은 나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또 차곡차곡 쌓이고, 과거의 내가 되면서 나는 성장했다. 나는 나의 과거를 부끄러워했고, 싫어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저 그 감정들조차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나는 완벽하지 않다. 아마 외교관이 되었어도, 기자가 되었어도 나는 계속 무언가를 갈망했을 거고, 또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아마 미래의 나는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 지금 마트를 다니던 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마치 다 해진 밧줄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과 같다. 떨어질 수도 있지만 새로운 밧줄을 어딘가에서 찾아낼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 밧줄에서 곡예를 부리는 법을 배울 수도 있는 것. 지쳐서 한 손으로 밧줄을 붙잡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도 있는 것. 내가 배운 삶이란, 인생이란 그렇다.
우주에서 우리를 본다면 우리는 모두 별처럼 빛날 것이다. 좌절하는 우리도, 행복한 우리도, 슬픈 우리도, 사랑에 빠진 우리도.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 모두 찬란하다. 우리가 가진 과거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 과거들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그 과거들을 있는 그대로 정면으로 바라보고 품 속에 안아줄 수 있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기에, 나는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고, 부모님의 마음을 일찍 이해할 수 있었다.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다른 경험을 하면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랑하던 피아노를 그만뒀기에, 피아노 외에도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나의 영원한 천사, 나의 강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지만, 그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평생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잊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의 과거를 사랑한다. 아니, 나는 나를 사랑한다. 부서지고 깨지고 넘어져도 나는 나니까. 행복한 과거만 편식해서 기억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