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랑이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가 올라온 어느 주말 저녁, 랑이는 변함없이 문 여는 소리에 달려 나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앙앙거리며 보채는 까만 고양이를, 나는 짐도 다 풀기 전에 번쩍 들어 안아 달래며 찬장에서 간식을 하나 꺼내 주었다. 좋다고 발버둥 치는 고양이 코에 잔뜩 간식을 묻히는 장난을 쳐가며 놀던 중에 랑이가 토해놓은 사료 흔적을 보았다.
평소에도 가끔 그러던 랑이여서 큰 걱정은 안 했다. 다음날 아침, 간식을 토해놓은 흔적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이상하다 싶어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약간의 밥만 주고 출근했고, 퇴근 후에 보니 건드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던 사료를 보기 전 까지는.
큰일이다 싶었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아침이 밝았고 나는 랑이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퇴근하고 오면 빨리 병원에 가보자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출근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뭘 잘못 먹었나?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나? 머릿속에 온통 랑이 생각뿐이던 차에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인사도 잊은 채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나가기 싫어 바둥거리는 고양이를 어깨 위에 올리고 급한 마음에 원래 다니던 멀리 있는 큰 병원 대신 집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뭘 잘못 먹었어요?' 어떤 할아버지 의사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쓱 보더니 랑이 발을 낚아채서 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엑스레이는 3장이 기본이라며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랑이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얼마 후 엑스레이를 보며 한참 동안 고양이 해부학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셨다. 대체 그래서 왜 우리 고양이가 아픈 거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화내 봐야 좋을 것 없을 거라는 생각에 꾹 참고 묵묵히 들었다. 어디에 고양이 뭐가 있고 뭐가 있고. 잠시라도 랑이에게 눈길을 돌리면 집중하라며 혼을 냈다. 30분인가 쓸데없는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생각 하나는 내일 반드시 멀리 있더라도 큰 병원을 가보자는 생각뿐이었다. 의사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결론적으로는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수액과 주사를 한방 놓아준 뒤 알약 두 개를 주었다. 망할.
어떻게 먹여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목구멍에 쑥 밀어 넣어요.' 하고 퉁명스럽게 돌아섰다. 나는 집에 돌아와 랑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어떻게든 약을 먹이려고 애를 썼다.
랑아 제발, 이거 먹어야 너 안 아파. 하나만 먹자. 제발 내 고양이야.
밤새도록 온 집안이 랑이에게 알약을 먹이기 위해 미끼로 사용되었던 간식 범벅이 되고, 두어 번 정도 랑이가 하악질을 하고, 한 번 정도 내가 울다가 지칠 쯤에 결국 약을 먹이는 일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별 일 아닐 거야. 이까짓 알약 안 먹는다고 너 안 죽어. 나는 고양이 침 투성이가 되어 반쯤 녹아버린 알약을 쓰레기통에 처넣으며 오늘은 반드시 큰 병원에 가겠다 다짐하고 다시 출근길에 나섰다.
큰 병원은 일찍 문을 닫는다. 퇴근하고 오면 랑이를 들고뛰어야 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헉헉대며 접수를 마치고 선생님을 만났다. '원장님 예약하시고 정밀검사 한 번 해보셔야겠는데요? 증상을 들었을 때 배제할 수 있는 질병이 별로 없고 아기 나이가 검사할 때도 되었어요. 지금은 열이 높아서 밥 먹기 힘들어서 토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랑이 앞다리보다 큰 주사기로 수액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부디 큰 병이 아니길 바랍니다.'
반차를 냈다. 일찍 퇴근하고 싫다는 랑이에게 연신 사과하면서 케이지에 밀어 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원장님은 랑이를 보더니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며 최선을 다해서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숨을 몰아쉬는 나를 달래주셨다. 얼마간의 검사가 끝난 뒤 나는 랑이와 병원 밖 대기실에 둘이 남겨졌다.
랑이야 검사는 안 힘들었어? 너 별 일 아닐 거야 그렇지? 얼른 건강해져서 다시 형이랑 팔짝팔짝 뛰어놀자.
나쁜 일은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원인은 신장에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요독 수치. 작은 결석이, 하필이면 더 작은 요관에 걸려 막혔다고 한다. 한쪽 신장은 이미 물이차서 손 쓸 수 없이 망가지는 중이고 다른 한쪽은 어째서인지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마취를 이길 수 있는 몸이 아니어서 수술이나 다른 외과적 치료도 힘든 상황이라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바로 앞에 앉아있을 원장님이 갑자기 순식간에 작은 점만큼 멀어졌고 귀에서 모든 소리가 물속에 들어간 겉 마냥 멀어져 갔다. 머리를 세차게 몇 번 흔들고 겨우 입을 떼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고양이 살 수 있냐고. 원장님은 한숨을 쉬면서 일단 매일마다 병원으로 와서 수액치료든 뭐든 해봐 가면서 수치가 떨어지길 바라야 한다고. 그 방법밖에 없다고. 깊은 한숨을 쉬시면서 랑이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쓸어주며 말을 이으셨다. '일단 열은 떨어졌으니 뭐라도 먹어야 삽니다. 뭐라도 먹여주세요. 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기적이 필요합니다. 수액이 결석을 밀어내길 바라야 해요.'
간호사분이 주사기 바늘을 빼서 몇 개 챙겨주셨다. 주사기에 넣을 수 있는 사료가 있다고 해서 집어 계산하려는데 원장님 쪽을 슬쩍 보시더니 그냥 가져가시라고 랑이 얼른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봉투에 슬쩍 담아 넣어주셨다. 그날부터 내 밤은 사라졌다. 2시간마다 랑이를 붙잡고 입에 사료를 밀어 넣었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온몸이 랑이 발톱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온 집안에서 사료 냄새가 진동할 때쯤 작은 주사기 세 개 분량의 사료를 다 쓰고 기진맥진한 채로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2시간이 지나면 사료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데워서 물을 섞고 다시 이 과정을 밤새 반복했다.
랑이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 잠 따윈 안 자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왜 밥을 안 먹을까. 눈이 점점 흐려지고 몸이 여기저기 쑤셔왔다. 에너지 드링크를 책상에 쌓아놓고 마셔가며 잠을 버텼다. 그러다 출근시간이 되면 좀비처럼 나갔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집에 달려와서 다시 숨을 턱끝까지 밀어 올리며 병원으로 뛰어가는 날을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고 다시 돌아온 주말. 정신이 혼미한 채로 앉아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랑이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장 꼭대기에 올라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소파를 밟고 올라가 랑이 머리를 쓸어주며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다 랑이에게 미안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많이 못 놀아주던 것, 간식도 잘 안 주고 가끔 주말에 집을 비우던 일이나 장난감도 많이 안 사다 주고, 안 된다며 못하게 막았던 일들. 그렇게 싫어하던 발톱 깎이나 목욕시키던 기억, 마른빨래 위에 못 올라가게 했던 일이나 노트북 키보드 위에 올라가는 걸 막은 일. 좋아하던 상자가 누더기가 되어 몰래 버린 일들이나 싫어하는데도 뒷발을 만지작거리며 괴롭혔던 일들.
하나하나 떠오르는 대로 사과하다가 결국 눈물을 못 이겨냈다. 책장 모서리에 이마를 박고 소리를 지르면서 목놓아 울었다. 제발 네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제발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너무. 한참을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눈이 동그랗던 랑이는 이내 눈을 반쯤 감고 몸을 길게 뻗었다. 어떡하지? 정말 만에 만에 만에 일억십억백억천억에 하나라도 우리 진짜 이별해야 하는 날이 오게 되면 쿨하게 안녕하고 보내줘야 할까? 그게 너 다우려나? 아니 아니야 나는 역시 너를 못 보내겠어. 가지 마 제발 아프지 마. 아프지 마.
수액 치료는 계속되었다. 수액이 들어갈 때 랑이가 싫어해서 작은 머리를 양손으로 가볍게 감싸고 이마를 맞대어 괜찮다고 너 건강해지라고 하는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열심히 말을 걸었다. 굉장히 많은 양의 수액이었기에 맞을 때마다 랑이 덩치가 몹시 커진 듯 보였다. 수액을 다 맞을 때마다 우리 고양이 대장 고양이가 되었네? 아주 덩치가 커졌네? 하면서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랑이를 번쩍 안아 들고 잘 맞았다는 칭찬을 퍼부었다. '의사 인생에 이렇게 수액 잘 맞는 고양이는 또 처음이네요.' 원장님은 매일 저녁마다 나와 랑이를 위해 병원에 남아주셨다. '이렇게 치료하는 만큼 랑이가 좀 건강해지면 좋을 텐데.' 집에 갈 때 항상 주사기와 사료를 잔뜩 챙겨주였다. 랑이가 꼭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며, 먹기만 하면 살 수 있을 거라며.
랑이가 소변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간절한 내 마음과는 달리 집안 어디에서도 랑이의 소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원장님은 굉장히 난감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여셨다. '신장이 소변을 못 만들고 있는 거예요... 아... 여기서는 더 할 수 있는 게...' 한숨과 탄식을 섞으면서 말을 이으셨다. '보호자 분이 안 계실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24시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원장님에게 절대적으로 선생님을 신뢰하고 있으니 입원하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원장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거의 없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아픈 랑이를 낯선 곳에, 까지 말하다가 어금니를 물고 고개를 숙였다. 울음이 목구멍에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아픈 건 고양이인데 여기서 내가 울면 어쩌자는 건지. 최선을 다해서 랑이를 돌봐주시는 분들 앞에서 추태를 보여서 어쩌자는 거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어금니에 힘을 줘 물었다. '네 저도 그게...' 원장님도 물기 섞인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리셨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원장님은 결심이 선 듯 말하셨다.
'그러면 퇴근하시고 지금처럼 매일 제게 데려와주세요. 이 병원에 있는 약이란 약을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지금 저는 저한테 너무 화가 나요. 동물을 살리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보호자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저도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울음을 간신히 참아가며 감사하다는 말만 겨우 뱉으며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어떻게든 전하고 밖에 나와 병원비를 결제하려고 카드를 꺼낼 때였다. 원장님이 뛰어나오시면서 카드를 다시 내 주머니에 넣어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병원비는 랑이 나중에 살면 한꺼번에 다 받을게요. 어떻게든 꼭 받을 거니까 지금 주지 마세요. 아주 조금이라도 부담 갖지 마시고 내일도 모레도 꼭 저에게 데려와주세요.'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이렇게 고양이가 아프면 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요. 랑이 저에게 데려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해요. 어떻게든 제가 노력해볼 테니까 내일도 모레도 반드시 와주세요.'
나는 서서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병원비를 다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억지로 웃으며 인사하고 병원을 나와 건물 구석에 앉아서 넘치던 울음을 다 쏟아버렸다. 기운이 많이 없어진 랑이는 케이지 안에 엎드려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나를 볼 뿐이었다.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깟 병원비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까 너만 살면 좋겠다며 케이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생전 내 잠자리에는 랑이가 들어온 적이 없었다. 랑이에게 밥을 주고 지친 마음에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 잠깐 누웠다가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랑이가 내 팔을 베고 자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너도 뭔가를 준비하는구나. 나는 다른 손으로 랑이의 머리를 만져주며 말했다.
검은 털을 가진 생명체는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윤기가 난대. 너는 어딜 가더라도 참 사랑받았던 고양이었구나, 집에서 귀하게 자란 고양이었구나 하고 알아보게 할 거야. 내 손때 잔뜩 묻혀서, 내 냄새 잔뜩 묻혀서. 랑이는 기운이 없는 와중에 가늘게 골골거리며 어둠 속에서 그 별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마주 봤다. 내가 좋아하는 엘렌 심이라는 작가는 동물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동물 환생 학교로 간다고 하더라. 거기서 환생하고 싶은 동물 반으로 가서 환생을 준비한대.
랑이야 네가 만약 거길 가게 되면 꼭 고양이 반으로 가겠다고 해. 그리고 나한테 다시 와. 우리 또 같이 놀자.
그날 이후 걷지도 못할 정도로 랑이의 상태는 안 좋아졌다. 병원을 다녀오면 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밤새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 나에게 온 날부터 3년 반 정도 함께 살아온 날들. 전 연인과 헤어져 온갖 정신병을 달고 살던 내가 랑이를 데려오고 나서 약을 다 끊고 삶을 어떻게든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던 일들. 처음 온 날 숨어 들어갔던 구석의 일이나 처음 내 손을 타고 냄새를 맡았던 일들. 랑이에게 걸었던 수많은 말들을 다시 한번 말해주면서 열심히 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젠가 네가 나를 다시 찾아와야 할 일이 생기면 내 냄새를 잊으면 안 된다며.
밥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랑이를 품에 안고 옆으로 누웠다. 잠깐 잠이 들었다. 꿈에 작은 까만색 고양이가 나왔다. 비가 굉장히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우산 속에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펴지도 못하고 혹여나 비가 우산 속에 들어갈까 봐 우산을 온몸으로 덮었다. 왜 고양이가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눈을 떴다. 랑이가 숨을 안 쉬고 있었다.
랑이야.
작게 불러보니 랑이는 큰 숨을 한 번 내쉬고 꼬리를 작게 흔들었다.
11월을 여는 첫새벽.
랑이의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불을 켜고 랑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았다. 나에게 와주어서 너무 고마웠다고. 분에 넘치게 행복했다고.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고 밝게 빛났다고. 만약 너도 조금이라도 행복했다면 꼭 다시 나에게 오라고.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다시 검은 고양이로 태어나서 나에게 오라고. 이제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고. 내 팔 안에서 축 늘어져 있는 랑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물티슈로 랑이 몸을 잘 닦아 준다음 맨 처음 데려온 날 덮어주었던 담요에 랑이를 잘 감싸주었다.
예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아침이 밝고 병원에 전화해서 말했다. 잠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났다. 그리고 원장님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잇지 못하시며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만 반복했다. 차가운 병원 바닥에서 혼자 가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제가 랑이 꼭 기억할 거예요. 끝까지 포기 안 해주신 보호자님도 꼭 기억할 거예요. 제가 부족한 의사여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며 말을 이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까지 랑이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조만간 인사드리러 찾아뵙겠다는 말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랑이의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랑이를 처음 소개해 준 친구가 같이 가 주었다.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주변의 나무와는 달리 은은한 전구와 네온사인이 이색적으로 빛나던 고양이 장례식장의 건물에서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과 좋은 향기가 나고 있었다. 나는 담요로 감싼 랑이를 품에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나는 연신 랑이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만진 랑이의 발이 너무 차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다리를 뿌리칠 것 같은데 이렇게 찬 발로 가만히 있는 랑이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랑이의 몸 색깔에 맞는 예쁜 다홍색 삼베와, 작은 나무관 속 빽빽하게 꽂은 국화들과 꽃들이 랑이 주변을 감쌌다. 우리 랑이 이쁘게 하고 가네. 나는 마지막까지 삼베 밖으로 비집고 나온 랑이의 꼬리와 뒷발을 만지작 거리며 마지막 화장으로 가는 길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랑이가 담겨온 작은 유골함을 건네받았다. 작은 고양이었지만 더 작은 유골함에 랑이의 전부가 담겨졌다는 사실에 또 생각이 멍해졌다. 장례식장의 직원은 땅에 묻어줄 수 있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쁜 꽃나무를 함께 심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랑이는 그중에서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 고양이이다. 랑이가 이걸 볼 일은 없겠지만, 보고 이해할 일도 없겠지만, 이제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만 남겨둔다. 그리고 만약, 정말 만약에 환생이라는 게 있어서 랑이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꼭 다시 나에게 왔으면 좋겠다. 다시 우리 행복했으면 좋겠다.
두 개의 별과 하나의 밤을 닮았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영원한 내 고양이 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