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5층 정도밖에 안되지만 건물은 꽤 높았다.
작은 고시텔에서 항상 불을 꺼놓고 살았다. 이리저리 상처받는 현실이 너무 아팠다. 뭐 하나 나아질 기미 없는 현실과 두통과 수면장애와 보이지 않는 미래는 나를 밀어냄과 동시에 당기고 있었다. 밀릴 수도 없고 당겨질 수도 없는데 밀리고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나갈 수 없고 머무를 수 없었다.
내가 죽으면 강의는 다 결강 처리되려나? 연락이 안 되면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그냥 왜 연락이 안 되지? 하고 말려나. 그러려나. 그러면 나는 언제쯤 발견되려나. 내가 떨어지고 혹시라도 운 나쁘게 숨이 약간 붙어있어서 발견한 사람이 나를 병원이라도 데려가버리면 어떡하나. 의사는 무슨 수단을 통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주려나.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컴퓨터에 유서를 남기기로 했다. 메모장을 하나 켜서 그냥 생각나는 단어들을 쭈욱 써놓았다.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러면 이걸 발견한 누군가는 내 행방을 찾아주겠지. 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밤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옆에 두고 난간에 올라섰다가 그래도 마지막 가는 풍경은 눈에 좀 넣어두자 하고 걸터앉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가로등 불빛 하나, 나뭇잎 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다. 거참 아이러니하지. 다시 못 볼 풍경이라 생각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을 그 풍경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느꼈나 보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흘끔 올려보고는 제 갈길을 간다. 무심하기도 하지.
그러는 중에 신발 옆에 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문자가 하나 왔다.
'컵라면이나 먹자 할랬는데 너 방에 없더라. 너 좋아하는 튀김우동 물 부어놨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 종종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던 친구의 문자였다. 타이어 휠 공장에서 일하면서 조금 친해졌었다. 가만 보다가 배가 고파졌다.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내려갔다. 친구는 물을 부어놓았다며 빨리 오라고 채근한다. 아무 말 없이 컵라면을 먹었다.
이야길 듣던 그녀는 가만히 말했다.
'그런 결심이 들면 뭐든 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눈이 그렇게 이뻐 보이더라고.'
날이 꽤 더울 텐데도 기어이 하늘 거리는 하얀색 가디건을 걸친 그녀가 말했다. 한강을 지나던 지하철 2호선에서의 이야기였다. 한동안 말없이 덜컹거리는 지하철 칸에서 나란히 앉아 석양 비치는 한강을 보고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이 한적한 어느 초여름이었다.
'나는, 여기.'
그녀는 왼쪽 손목을 걷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왜 실패했냐는 내 물음에 실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구조됐어.'
가만히 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그냥 살자, 하고.
내게 보여줘서 고맙다고 하며.
오래된 친구가 갑자기 연락했다. 시간 괜찮으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 결혼하나? 아니면 돈이라도 빌려달라고 하려나? 궁금증 반 정도 가지고 만나서 술 몇 잔 기울인 후에 친구가 어렵게 운을 떼었다.
'어제 상사가 술을 너무 먹여서 집에 못 가고 회사로 돌아갔거든.'
'근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술이 원수라 그렇다며 빨리 마셔 없애다고 술잔을 재촉한다. 취기가 우울을 불러오고 그 우울을 취기로 쫓으려나보다. 내쫓으려던 우울이 돌아와 내게 말로 꺼내서 주섬주섬 보여주나 보다. 그녀가 가디건 소매를 걷어 보여주려던 그 손목의 흉 자국처럼.
'옥상으로 기어올라가다가 계단에서 허리가 아파서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한참 울고 나니 좀 괜찮아지길래 그냥 내려왔어.'
좁은 방제실에서 커다란 건물의 시설관리를 하고 있다는 그 친구는 혼자서 하루의 대부분을 그 좁은 공간에서 모니터만 보며 지낸다고 했다. 그게 지독하게 힘들고 외로운데도 직장 상사가 점검차 방문이라도 오면 뛰어다니며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1년이 넘도록 연락 오는 곳이 없어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좀 생각하다가 술 몇 잔 더 비우고 더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으니 속에 있는 그거 담아두지 말고 다 말로 꺼내라고 했다. 다 털어내고 남한테, 남이 어려우면 나에게라도 보여주면 속이 좀 후련해질 거라고. 말해줘서 고맙고 나는 네가 어떤 말을 해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좋은 정신과 몇 군데와 맞는 선생님을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대신 나는 친구에게 회사 근처 맛집 몇 군데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두 군데 다 시간 괜찮으면 둘이 같이 가보기로 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더라도 살아는 보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