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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Nov 28. 2018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데이: 브런치

글을 써보자

언젠가부터 글을 작가의 서랍에 쌓아만 두고 있었다. 뭘 써도 내가 쓴 것 같지 않았고 이걸 쓰는 게 맞나? 하는 이상한 물음이 들기 시작한 이유에서이다. 눈치 안 보고 그냥 야금야금 흘러넘치는 감정을 버리고 갈 생각으로 만든 브런치였는데 언젠가부터 내 글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글은 쓰고 싶은데.


이참에 작문법이라도 제대로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글쓰기 모임 같은 게 있으면 다녀볼까도 고민하다가 이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데이를 연단다. 첫날은 브런치라고 한다. 자세히 읽기 전에 일단 신청부터 눌렀다. 평일인데 회사는 어떡하지? 하다가 에이 뭐 되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되더라.


들어갈 때는 밝았다.


점심을 대충 먹고 회사를 나섰다. 이게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변명하려면 보고서를 뭐라고 쓸까 생각하면서. 나올 때는 그래도 '뭐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조수용 대표이사도 나온다고 하는데요?' 하는 말로 대충 도움될 거라고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귀여워.


글을 쓰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딱히 내 문제의 해답을 찾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글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조금은 해소될까 싶은 마음 반, 그리고 글이라는 것으로 온전하게 내 시간을 꽉 채우고 싶은 마음 반. 그런 마음으로 문턱을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사방이 글이었다.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아온 나에게 밤은 특별하다.


글을 쓰는 이벤트를 한다고 한다. 나에게 임팩트를 주었던 글귀를 적어달라길래 나는 '밤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라는 가장 좋아하는 말을 적었다. 불면증으로 잠 못 자던 어렸을 때, 까만 하늘이 파랗게 변하는 모든 순간을 뜬눈으로 매일마다 보면서 미묘하게 색이 변하는 그 순간을 보는 모든 나날이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중에 그 사이에 있는 검파란 색을 쪽빛이라고 부르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항상 이쯤 되면 저 하늘은 쪽빛일까 하고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밤이 좋았다. 이런 나에게도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찾아와 주는. 그 이후로 혼자 밤에서 깨면 창틀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는 것은 내 오래 습관이 되었다.


나에게 글의 힘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는 종이도 있었다. 문장이 선정되면 책을 한 권 준다길래 냉큼 적었다. '삶을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살 수 있게 해 준 계기'라고 적었다. 언젠가 단어를 다룰 줄 안다는 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글로 적어두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글을 더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단어를 더 많이 알고 표현을 더 잘 다루었다면 그날 밤의 색이 바뀌는 과정을 영원히 나에게 남겨두고 남에게도 전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언어를 다룬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그게 나에게 글의 힘이었다.


그리고 선정이 되어서 책을 받아왔다.


여차저차 사진도 찍고 이벤트도 참여하다 보니 조수용 대표가 인사하는 소리가 위층에서 들렸다. 아 이제 시작하나 보다. 냉큼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제일 인상깊었다.


조수용 대표는 역시 비즈니스적인 측면과 디자인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을 읽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넘어갔다거나 글이 가진 형태는 내용을 대변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직관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의 시대 속에서 텍스트가 가진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매거진 B의 실물 출판을 고집한다는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대학교에 있을 때만 해도 인쇄 매체에 대한 종말론이 활발했었다. 매체의 발전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을 뒤엎을 거라고, 인쇄물은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인쇄물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살아남아있다. 손 끝으로 만져질 수 있는 촉감의 자극,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는 종이의 냄새와 변형. 책의 무게와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이 모든 아날로그의 감각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수용 대표는 인쇄했을 때 생기는 무게감이 있다고 했고 그것을 매거진 B에서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편지 보내고 싶다.


다음은 요조 작가. 편지가 가진 힘을 이야기했다.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모든 문장이 나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가진 것에서 오는 감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정말 좋았다. 여전히 나는 편지를 쓰는 게 어렵지만 이때만큼은 오랜만에 편지를 써볼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변할지도 모르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가둬 적어 보내는 일은 내 마음을 마음이 속이는 일 같아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저도 그 글에 추천 눌렀었어요!


다음은 김민섭 작가.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이 처음 올라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 작가가 저기 있다니. 참 세상은 살아보고 볼 일이다. 고백과 선언, 그리고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그 질문을 공간에 확장시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 많이 와 닿았다.


대리 기사 일을 하신다는 말에 옛날 기억이 났다. 사진 수업을 듣는 와중에 찍고 싶은 것을 찍어오라는 과제가 나온 날 한 학생이 다음부터 수업에 안 나오기 시작했었다. 과제 제출 기일이 다 되어서야 나타난 그 학생이 찍어온 사진들은 서울역의 노숙자들이었다. 피사체와 자기 사이에 카메라가 있어서는 자기가 찍어야 할 대상이 있을 뿐이었다며 자기가 찍고 싶은 것을 찍기 위해서는 자신도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했었다.


김민섭 작가가 내 지도교수는 대학에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을 때, 그때 그 사진 수업을 듣던 학생 생각이 났다. 나도 혹시 내가 얻고 싶은 답은, 느끼고 싶은 무언가는 내가 사는 세계 밖에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지도 않았던, 못했던 그런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조금은 혼나는 느낌이었다.


쉬는 시간을 짧게 가지고 장강명 작가의 순서가 되었다. 솔직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글을 참 못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팔로워가 십만 명을 넘어섰을 때, 대체 왜 내 문장에 그렇게 사람들이 반응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걸 모아 책을 냈고 몇 쇄를 찍어냈지만 나는 그 책을 한 번도 완독 하지 못했다. 내가 쓴 글이 너무 부끄러워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처럼 멋진 단어를 알지도 못하고 멋진 표현을 쓰지도 못한다. 조사를 많이 쓰고 문장 순서도 가끔 틀리고 감정도 넘친다.


장강명 작가는 누구나 글력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분명 잘 쓰는 점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웃복서와 인파이터의 비유를 들어주었을 때 나는 작게 탄식했다. 나도 장점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당장 4-50편 정도 되는 글을 하나 기획해 보라고 했을 때 그제야 생각이 들었다. 글이 안 써진다고 앉아만 있을 게 아니구나. 써봐야 내가 뭘 쓸 줄 아는지 아는 거구나. 하고.


죄송해요. 저는 조사를 못 버리겠어요.


손화신 작가는 다듬고 다듬어서 나의 색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세상에서 다듬는 걸 가장 못하는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한테 스타일이라는 게 있을까. 특히 나는 조사를 많이 쓰는데 조사를 덜어내라는 말을 보면서 조금 슬픈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게 강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조사 많이 쓰는 게 좋은데... 하고... 


덕분에 회사에 제출할 보고서를 썼어요.


마지막 연사는 강백수 요정이었다.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로 시작한 시간은 정말 좋았다. 글쟁이가 노래를 만드는 법을 보며 모든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는 하나의 산문에서 갈라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업무에 필요한 단순 명료한 글에 익숙지 못하고 길게 풀어서 써야만 생각이 드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방법이었다.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팅에 대해 교육받을 때,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써오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과제를 내 준 차장님은 '너는 긴 글을 쓸 때 진짜 강하구나.'라는 말을 메일에 써주었었다. 물론 반대로 말하면 카피는 못 쓴다는 말이 되겠지만, 나는 그 칭찬 아닌 칭찬이 담긴 메일을 몇 날 며칠을 읽으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났다.


나갈 땐 어두웠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회사에 뭐라고 써야 할까 하는 걱정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글이라는 주제에 푹 빠진 시간들이었다.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빨리 글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쓰면서 쓰고 또 쓰는 일일 테니까. 뭐가 되었든 일단 쓰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뭔 많이 받았다.


선물도 장난 아니게 바리바리 챙겨주어서 많이 받아 왔는데 그중에 만년필을 있다고 했다. 뭘 줬을까 기대하면서 열어보았다.


라미 사파리 차콜 블랙은 죽을 때 까지 날 따라다니려나보다.


전 연인과 커플 아이템으로 나눠가졌던 그놈의 라미 사파리 차콜 블랙. 포장을 뜯자마자 야밤에 혼자 배를 잡고 웃었다. 이놈의 만년필은 참 질기게 따라다니는구나 하고.


아무튼 정리해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에 비해 안 되는 능력으로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막막하게 드는 와중에. 그래 글도 써야 늘지 못 쓴다고 앉아 있으면 뭐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크리에이터스 데이였다. 고마워요 카카오.




그런데 왜 글력은 맞춤법 검사에 걸리나요? 그리고 해시태그가 안 남겨 지는데! 이렇게 하면 스타벅스 기프티콘 준댔잖아! #카카오임팩트 #크리에이터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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