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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Mar 19. 2017

형 다녀올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출근하는 엄마에게 해주는 육아 팁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을 가기 전 아이에게 잠시 다녀오는 것이라고, 언제 돌아오겠노라고 꼭 약속하고 일을 다녀오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글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고양이 키우는 일이 육아랑 별반 다를 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주제에 좁은 방 안에 고양이를 두고 나오는 것이 항상 미안했다. 문을 닫고 열쇠로 찰칵 잠그는 순간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출근하는데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내가 왜 지금 나가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형은 지금 돈을 벌러 나가야 해.'

'돈을 벌어야 형이 밥도 먹고 우리 랑이 사료도 먹고.'

'고슴도치들도 밥 주고, 가끔 너 먹을 간식도 사지.'

'그러니까 형이 나가도 형 미워하면 안 돼.'

'알았지?'


하고 알아들을 리 없는 고양이를 설득해야 나올 수 있었다.


고양이는 내가 출근하는 게 처음에는 많이 싫었던 모양이다. 내가 씻으려고 세면대 앞으로 가면 세면대에 폴짝 뛰어 올라서 물 트는 걸 방해했다. 저리 가라고 엉덩이를 툭툭 밀면 아예 자리를 눌러 잡아 버티고 내려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 위로 물을 틀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힘들게 세면대에서 꺼낸다음 잽싸게 물을 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려놓자마자 다시 뛰어올라서 자리를 잡았으니까.


내가 옷을 갈아입을 때도 앞발을 번쩍 들고 나를 방해했다. '야앙- 야앙-' 하면서 나를 보고 앞발을 휘저었다. 그러다 내가 나가려고 현관으로 가면 잽싸게 뛰어가서 현관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면 나는 다시 고양이를 안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설득시키다가 시간이 촉박해져서야 고양이를 캣타워에 올려놓고는 잽싸게 나오고는 했다. 그마저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현관문 앞에서 고양이가 '야옹- 야옹-'하고 우는 것이 그칠 때 까지 서있다가 출근하고 했다.




지금은 일단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면 고양이가 '아앙!' 하면서 내 머리맡으로 뛰어들어 제 머리를 나에게 마구마구 부빈다. 그러고 내가 물을 한 잔 마시고 씻으러 들어가고 옷 갈아입으러 갈 때 발밑에 착 붙어서 졸졸 따라오며 온몸을 부빈다. 그러다가 내가 외투까지 입고 나면 어느새 자기 잠자리 중 하나인 장롱 위 캐리어 위로 뛰어올라가 잘 채비를 하고는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다. 그러면 나는,


'아이 착하다 우리 고양이.'

'형 오늘도 출근 잘 하고 올게.'

'집 잘 지키고 있어야 돼 고양아.'

'낯선 사람 들어오면 네가 왕 하고 물어서 쫓아내야 돼.'

'고슴도치들이랑도 사이좋게 지내고.'

'얼른 다녀올게 고양아 이따가 보자.'


하고 인사하면서 손을 뻗어 가볍게 랑이 코를 문질러준다.

그러면 고양이는 졸리다는 듯 눈을 반쯤 감고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묻고 잠이 든다.


정말 사랑스러운 출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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