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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Jun 28. 2019

일단 마음먹기

무엇이든 모름지기 고양이가 붙어있으면 최고렸다

자 그러면 손글씨를 연습해보자. 일단 글씨체 교정 전 얼마나 글씨체가 심각한지 누구나 공감할만한 자료가 필요했다. 어릴 적 쓰던 일기 뭉치나 대학교 때 썼던 공책을 찾으려고 창고를 열심히 뒤지다가 문득, 내 어렸을 적 추억을 날려먹었다는 상실감에 전부 폐지로 치워버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 무슨 러시아 의사 처방전 같은 그따위 폐지 뭉치가 있어야 이게 사는데... 볼펜으로 아무 종이에나 끄적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다. 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악필이지?


이렇게 보여도 크리에이터스 데이 때 선물 받으려고 최대한 열심히 쓴 글씨이다.


나의 거지 같은 글씨를 보여주기에 굳이 역사를 보여줄 것 까지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최악의 악필이었고 그냥 써도 누구나 '아 이 친구는 상체에도 발이 달렸나 보구나.' 하고 수긍할만한 글씨였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교정이 된다고?


그럴 리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우리 아버지는 글씨를 굉장히 잘 쓰신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어느 날 펜글씨 교본과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을 하나 사다 주셨다. 그러시고는 이번 방학 때 이거 한 권만 다 쓰면 글씨가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펜을 잉크에 찍는 수고를 더해, 글씨에 공을 들이며 교정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지만 그건 아들의 성격을 과대평가한 아버지의 실수였다. 나는 잉크를 찍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뚜껑에다 덜어서 찍는 것보다 퍼 나르는 느낌으로 펜에 잉크를 묻혔고, 글씨를 쓴다는 느낌보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기분으로 칸을 무시하고 선을 주욱 그었다. 다 쓰려면 한 달은 걸릴 거라고 아버지께서 그러셨지만 나는 이걸 3일도 안 걸려서 끝내버렸다.


말하자면 이런 식.


이 것이 글씨를 위해 내가 투자한 유일한 역사이다. 이런 내가 정말 교정이 가능할까? 하는 강한 물음이 들었지만 내가 마케팅해야 하는 책의 힘을 내가 가장 잘 느껴야 하는 게 아니겠냐는 마음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면서 내가 직접 책의 내용을 따라가 교정하는 콘텐츠를 게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책이 안 나왔기 때문에 출력물로 책을 대신하기로 하고, 귀여운 고양이 볼펜과 그리드 연습 노트도 샀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악필을 고쳐보자고 마음먹고 멀다면 먼? 4주간의 악필 교정을 시작했다.


교정을 위해 산 고양이 볼펜 중 최애 볼펜.


과연 얼마나 글씨가 바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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