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온다책방

by 이승준

어릴 때는 서점을 참 좋아했다.


언젠가 시골로 이사 가서 살던 때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가서 책 한 권 품에 안고 돌아왔다. 충주엔 큰 프랜차이즈 서점이 없다. 대신 중간 규모의 서점 두 개가 있고 작은 중고서점이 여럿 있을 뿐이다.


오래간만에 내려간 고향집은 다른 동으로 이사를 했고, 어릴 적 자주가던 그 서점이 꽤 멀어졌다.


서점에서 나는 책 냄새, 책 구경이 그리워서 한 번 가보고 싶다 할 때쯤, 집 근처에 못 보던 작은 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온다책방. 이름도 왠지 내 취향인 이 서점은 독립서점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책들이 여기저기 구비되어있는, 책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문 앞에 가면 셔터가 굳게 닫혀있거나, 새로운 것 앞에서 생기는 작은 소심함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기웃거리기만 한참을, 다시 집에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어느 날, 날씨가 좋던 날. 기어코 용기를 내서 밀고 들어간 유리문 안에는 난잡하게 보이는 책들과 그 책들 앞에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이 보였다. 서점 주인의 추천사를 손으로 빼곡히 적은 것부터, 책을 쓴 작가가 손님과 서점에 보내는 감사인사, 잡지의 존속과 근황을 알리는 공지사항 같은 것들이 책마다 빼곡히 붙어있다.


인상 깊은 페이지와 책을 읽고 난 뒤 느낀 솔직한 소감은 반드시 책을 들어보게 만들었다. 서점 주인과 작가가 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냥 마음 편히 구경이나 할까 하는 생각은 어디 가고 품 안에는 이것저것 책이 쌓이기 시작한다. 책 한 권 끌어안으면 꽉 차던 어렸을 때의 품이 이제는 꽤 여러 권 안긴다.


개중에는 그냥 대충 인쇄하고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은 것 같이 보이는 책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치 없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정이 느껴지고 귀엽다는 생각에 웃음이 먼저 나온다. 조금 훑어보다가 품 안에 넣기로 했다. 큰 서점에서는 절대로 사지 못하겠지 하면서.


책을 산다는 느낌보다 선물을 가져간다는 느낌이 훨씬 컸다. 가격에 맞는 가치를 지니고 읽을거리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이 책을 쓴 사람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어떤 책은 종이봉투에 하나하나 끈을 손으로 묶어 포장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작가가 따다 끼워둔 꽃잎이 한 장씩 들어있기도 했다. 어떤 책은 작가의 아픈 이야기를 담았는지 아직 살아있다는 생존 신고를 자필로 남기기도 했다.


한아름 계산대에 놓고 보니 서점 주인이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며 책값을 계산한다. 그리고 작은 사탕들이 들어있는 비닐봉지 하나를 책더미 위에 올리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스윽 내민다. 이마저도 좋다. 사랑스럽다.


언젠가 마음이 우울해질 때 가고 싶을 장소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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